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딤후 03:14~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4. 24. 03:24
728x90

2021년 1월 3일 미국 상원 하원으로 구성된 제117차 미국 연방정부 첫 의회가 민주당 한 하원의원의 기도로 첫날을 열었습니다. 기도 내용은 민수기 06장 24~25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를 지켜 주시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비추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라는 기도입니다.

이해가 쉽도록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은혜와 관용이 없이는 우리의 잘못된 본성에 의해 위험하게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칠 때쯤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우리의 유일신과 브라마나(힌두교의 신) 그리고 그 외 여러 곳에서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신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맨과 아우먼(A man and a woman 남자와 여자).

 

무슨 뜻인지 이해되십니까? 기독교의 아멘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의미의 A man and a woman을 아멘에 풍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미국 전역에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기도한 하원의원 이름이 에마누엘 클리버인데 미주리주 캔자스시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연합감리교에서 수십 년 동안 목회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에마누엘 클리버가 두 가지 논란을 조장하였습니다.

기도의 대상으로 하나님 외 다른 신들의 이름을 거명한 것과 아멘을 성희롱 비슷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남자와 여자(A man and a woman)로 비교하였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도 전해질 기도문을 기도의 대상과 기도의 마무리 아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성경에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물론 아맨과 아우맨이라 한 것은 한번 웃겨 보겠다는 썰렁 개그였다고 해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으로 유일한 신과 브라마나 신 기타 여러 잡신을 거명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을 망령되게 한 짓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이 이해됩니까?

유사한 일이 꼭 에마누엘 클리버 의원뿐이겠습니까? 교회를 출입하는 사람 중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은 일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습니다.

 

오늘 메시지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그릇된 사상을 전하는 자들로부터 미혹 당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지침서입니다.

나아가 흔들리기를 잘하는 오늘 우리를 훈련하는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오늘 말씀을 여는 접속 부사 그러나를 보십시오. 바울이 디모데에게 13절의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과는 다른 길을 가라는 의미로 받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믿음의 사람은 13절의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과는 달리 구분된 생활할 것을 권합니다. 디모데는 성경 기본 진리를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웠고(01:05), 신학은 바울로부터 배웠습니다(10~11; 행 14:12).

배웠으면 그 배운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거하라(μενε 메네). 떠나는 것의 반대 의미로 어떤 장소에 머문다, 산다는 의미로 진리를 배웠으니 그 영역을 떠나지 않고 지키라는 뜻입니다.

 

지금 디모데가 바울로부터 편지를 받은 사역지는 어디입니까? 에베소입니다(딤전 01:03). 디모데가 에베소에 머무는 이유는 에베소교회를 흔드는 거짓 교사들 때문입니다.

당시 성도 가운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왔다가 다시 유대교 돌아가는 자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방 출신 개종자들은 영지주의 유혹에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느냐 거하지 않느냐에 따라 믿음이 안전하기도 하고 파선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먼저 디모데에게 하나님 말씀을 확신하였으면 그 말씀에 거하라고 주문합니다.

 

성경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말씀 안에 내가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움을 받는 분기점이 됩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착착 맞아 돌아가는 기계 같은 믿음이 생긴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큰 오해입니다.  이런 원리를 따라 우리가 말씀 안에 들어가지 않고 말씀밖에서 머문다면 그 영혼은 거듭난 생명이 아니라 죽은 영혼 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지식으로만 그치면 말씀 밖에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꼭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경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믿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론이나 지식의 수준으로 이해하면 내 심령에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습니까?

그래도 그 생명의 메시지를 영혼의 양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영혼의 양식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5:0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할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요 15:07). 예 맞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계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내 안에 거하라는 의미는 말씀 안에 거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혼은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육신 생활에 기준을 두고 성경을 대하는 사람은 그 말씀이 영의 양식으로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구원도 관념 상태로만 여깁니다. 그러고도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착각에 빠져 삽니다.

 

고전 0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 되기 때문이라.

 

 

 2.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인격을 다듬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πασα γραφη).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밀합니다. 만일 성경이 문서 정도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한 문헌 수준이지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이라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감동(θεόπνευστος 데오프뉴스토스)이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신약성경에서 이곳에 한 번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세상 어떤 기록과 확연히 구별되는 말씀입니다. 16절 이 부분이 성경의 절대 영감을 뒷받침하는 절대 근거가 됩니다(벧후 01:21).

 

벧후 0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16절 뒷부분의 몇 단어를 보십시오. 성경은 교훈(διδασκαλιαν)과 책망(ελεγχον)과 바르게 함(επανορθωσιν)과 의로(δικαιοσυνη) 교육(παιδειαν)하기에 유익합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한다는 말은 믿음의 인격을 다듬는다는 의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영에 기준을 두고 성경을 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 하나하나가 심령을 송곳처럼 푹푹 찌릅니다. 자신의 악한 죄성을 뚜렷이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심령이 울렁거릴 정도로 내적 치료와 흔들림이 일어납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와 거듭남에 이릅니다.

 

말씀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순종이 없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나와는 상관없는 죽은 말씀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으며,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른다고(히 04:12)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내 삶의 안내자가 되는 그때부터 믿음의 변화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를 세상으로부터 하나하나 다듬어 갑니다.

성경을 조금 읽고 거기에 동의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며 입술로 주여주여 한다고 주님 안에 거하는 삶입니까? 야고보가 전하는 말씀을 봅시다.

 

약 0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세계 최고 리더십 전문가로 인정받는 존 맥스웰(미. John Maxwell 1947.2.20)은 한 사람을 알려면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 5명을 알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 5명의 평균치가 바로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가까이하는 사람 5명은 누구입니까? 그 친구들은 어느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지금 어떻게 변해 있습니까? 현재 나의 신령한 상태는 어느 정도입니까? 말씀이 내 인격을 다듬도록 온전히 맡깁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인도할 때 그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있으며 그 신령한 즐거움 안에서 내 모습이 점점 성화의 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침내 믿음의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일에 쓰임 받을 능력자를 만듭니다.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7절도 접속사(이는 ινα 히나)로 시작합니다. 앞 절인 16절의 4개 항목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으면 각 분야에서 선한 일(02:21; 딤전 05:10; 딛 03:01)을 감당할만한 온전한(αρτιος) 일꾼으로 변화됩니다. 아멘입니까?

말씀이 성도에게 들어가서 일어나는 변화는 관념과 형이상학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능력(προς)이 임하는변화입니다. 말씀은 활력(ενεργης 에네르게스) 입니다(히 04:12).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 귀하고 달콤하여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119:10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 성경은 인쇄된 책 수준의 이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눈으로만 읽으려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지성인의 의식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 말씀과 하나가 되어질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받는 믿음이 없으면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이 안 느껴집니다. 반면 심령에 하나님 말씀을 새기는 사람은 분명히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뜨겁게 요동하는 심장으로 말씀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내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 말씀을 즐거움으로 받을 때 능력의 일꾼으로 변화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순교자와 살인자의 차이를 아십니까? 순교자는 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임당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자는 신의 이름으로 순교자를 죽이는 사람입니다. 순교자는 신에 대해 잘 알고 살인자는 신에 대해 잘 모릅니다. 순교자는 말씀의 선을 넘지 않으나 살인자는 말씀의 선을 넘어갑니다.

순교자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살인자는 미움에 기초를 둡니다.  혹 순교가 나를 기다립니까? 이 일 역시 도전할만한 일이지 않습니까? 주님의 나라를 위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열정으로 무장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코로나19의 장기화 시대를 맞아 예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질병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지금 저는 누구보다 이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잘 압니다. 병원에 정기 진료만 가면 이 질병을 조심하라고 권합니다. 그만큼 취약합니다. 그런데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일단 대한민국 국민이 저를 위해 마스크를 써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품고 네 번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저의 강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9월쯤 들어갈 것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쓰임 받을 사명자를 찾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일을 위한 열정이 있습니까? 믿음의 도구로 쓰임 받을 줄 믿고 감당할 일정 세우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합니까? 말씀 속에서 믿음의 내공을 다지고 있습니까? 말씀을 얼마나 묵상하며 곁에 둡니까? 교회를 출입하는 사람이 왜 타락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해하였으면 능력의 말씀이 머리에서 심장으로 내려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손과 발로 실천에 옮기는 담대함을 표출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의 일을 열정을 품고 섬기기 위해서는 담대함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삶의 지혜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는 성경이 가라 할 때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춥니다. 성경 말씀은 진리와 비진리,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기준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표준입니다.

성경 말씀을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진지하게 여겨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망치와 같고 칼과 같습니다. 굳은 돌과 같은 고집을 깨뜨립니다. 하나님 말씀은 송곳입니다. 죄를 찌르고, 무디어진 감각을 일깨워줍니다. 성경 말씀은 불입니다. 가슴을 뜨겁게 하고 가슴이 활활 타오르게 합니다.

성경 말씀은 물과 같습니다. 영혼이 목마른 사람의 목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성경 말씀은 사람과 죄, 우주와 운명,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현미경과 같습니다.  

 

눅 12: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