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도시 나폴리 인근에 옛 도시 폼페이 흔적이 있습니다. 1세기경 로마 시대 때 번영을 누렸던 로마 귀족들의 휴양 도시입니다. 인구는 약 2만 명 정도 되었는데 79년 8월 24일 폼페이로부터 10km 정도 떨어진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폭발하여 엄청난 화산재가 날아와 6m나 쌓이면서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폼페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멀리 하늘에서 자갈비가 내리고, 붉은 용암이 넘치고, 화산재가 날아와도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구경을 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1738년, 헤르쿨라네움 근처에서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 파묻힌 도시의 흔적을 발견하고 신고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폴리 왕인 카를로 3세가 폼페이를 전면 발굴할 것을 명하여 그 모습이 세상에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려온 화산재에 묻히는 바람에 마지막 모습들이 부패되지 않고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때의 사건을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책을 만들어 보급하였습니다. 한 번 읽든지 보시든지 하면 자신의 장래를 준비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유다 왕국 16대 왕으로 8세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 왕 때의 선지자 스바냐의 메시지입니다. 이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날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날(8회)은 다른 용어로서 분노하시는 날, 심판하시는 날로 스바냐가 예언한 후로 40여년 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실현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1차적인 의미는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고, 2차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 질 인류 최후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의 날을 기독교의 종말론 입장에서 살펴보기 위해 제목을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이 옵니다. 로 정했습니다. 함께 은혜 받는 귀한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스바냐 선지자의 사역 스타일입니다. |
0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스바냐 선지자는 어떤 인물입니까? 조금 전 스바냐는 B. C. 630-625년 경, 유다 왕국 제 16대 왕 요시야가 통치(B. C. 640-609)를 할 때 활동을 한 인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01절 말씀을 보면 스바냐의 가문에 대하여 어느 선지자 보다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보통 선지자를 소개 할 때 아버지의 아들 이런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스바냐를 길게 소개하는 것은 명문가 출신 왕족의 가문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어떤 왕족입니까? 유다 왕국의 13대 왕 히스기야의 현손입니다(01).
여러분 현손의 의미를 아십니까? 간단한 대(代)를 공부 해 봅시다. 대는 나부터 시작하면 본인 1대, 아들을 낳으면 아들 2대, 아들이 아들을 낳으면 손자 3대가 됩니다. 이어서 손자가 아들을 낳으면 중손자(曾) 4대, 증손자가 아들을 낳으면 고손자(高) 5대인데 다른 말로는 현손자(玄)라고도 합니다.
히스기야 왕의 현손자 스바냐는 왕족이면서도 왕과 그 가문의 부패에 대하여 심판의 채찍을 들었습니다. 동시에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과 백성들의 부패에 대해서도 심판의 채찍을 들었습니다.
스바냐가 선지자로 등장할 무렵 이스라엘을 비롯한 근동의 패권국은 앗수르입니다. 많이 들어 본 이름 일 것입니다. 후일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이나 신흥세력 바벨론 제국의 등장으로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여 갔습니다.
이때 유다 왕국의 16대 왕 요시야는 대외 정치로는 선왕들의 친 앗수르 정책과는 달리 강력한 반 앗수르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대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신본주의 정책을 과감히 도입하였고, 내치(內治)로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이렇게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시행하고 국토를 넓혀가던 때(왕하 22:01~23:20)에 스바냐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등장하였습니다. 스바냐의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상에게 미혹을 당하여 바알을 섬기던 그 타락한 모습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만일 돌아오지 않고 계속 우상의 길로 나아가면 여호와의 날이 임하여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어떤 심판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모든 것이 멸절(滅絕) 된다는 경고입니다. 멸절이란 멸망하였다가 아주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0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의 날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매우 힘 있고 선명합니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담대한 믿음의 사역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예언하는 메시지를 보면 죽은 자의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장송곡과 같은 만가(挽歌) 운율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매우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보아 왕족 출신답게 공부를 하였고, 또 문학 재능도 뛰어난 사람입니다(01:12,17, 02:04, 03:11~13).
2.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이 가까웠습니다. |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 도다.
구약시대 선지가 가운데 처음으로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사람은 아모스 선지자입니다. 이후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 요엘 등 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과 캄캄함(암 05:18,20)입니다.
하나님을 배역하여 떠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로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절망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회복과 구원의 날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선지자의 메시지가 들리면 배척하였고 죽이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선지자를 죽인다고 여호와의 날이 오지 않습니까?
B. C. 58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 여호와의 날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학도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동시에 지구의 멸망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0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진멸하시겠다는 선언이 나옵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날, 최후 심판의 날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숨을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그들이 소유한 금과 은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건짐의 도구가 못 합니다. 여호와의 날에는 불신자들이 멸절되는데 그 도구는 불입니다.
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신약성경에는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 날을 종말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무려 1518번이나 나옵니다.
단일 사건에 대해 이토록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약속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잘 안 믿으려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계속 약속하신 일이 있는데 대표 구절이 마 24:30절입니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 도구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불입니다. 완전히 멸절시키는 도구는 불 밖에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는 물로 심판하셨지만 이제 물은 더 이상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또 하나의 심판의 도구는 불입니다.
벧후 0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초대교회 시절 이후로 경건한 신자들은 심판주로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특별히 사도 요한의 종말 메시지에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깨어 있는 자 만이 불에서 건짐 받습니다.
계 01:0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3.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습 02:0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기서 중복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세 번의 전입니다. 지나가기 전, 내리기 전, 이르기 전입니다. 전에 사용하던 개역 판에는 명령이 시행되어 를 명령이 시행되기 전으로 전 하나를 더 추가하여 네 번의 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살길을 찾으라는 안내문입니다. 그러면 살길을 열어주는 안내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0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겸손한 자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릴 것이니 살 길을 찾으라고 안내합니다. 여기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스바냐가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라고 표현한 말을 잘 보십시오.
단순히 유다 백성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느 사람이든지 겸손히 하나님을 찾으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문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두 가지를 꼭 행하라고 권합니다.
첫째, 여호와를 찾으라. 하나님 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둘째,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공의는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하는 것이며, 겸손은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영화관에서 외국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이 무엇입니까? The End입니다. 이 자막이 나오면 영화는 끝나고 그곳에서 바로 나와야 합니다. 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오락을 하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자신을 잊고 게임 속에 빠져 열심히 하다 Game Over가 나오면 역시 나와야 합니다.
영화가 The End라는 자막과 함께 끝이 나듯이, 게임이 Game Over라는 표시와 함께 끝이 나듯이 우리 인생도 죽음이라는 The End와 Game Over를 통해 개인의 종말을 만납니다. 이 개인 종말은 제게도 다가오고, 여러분에게도 서서히 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이 임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4절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일입니다.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스바냐는 예민한 영적 감각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바냐는 빠르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지만 스바냐는 듣고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향락에 취하고, 물질에 취하면 영적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술 취한 사람들이 균형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비틀거리며 걷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종말에 대하여 반복하신 말씀이 깨어 있으라. 입니다. 깨어있어야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해도 구원 얻은 자의 무리에 들어가, 주님 재림 때 등불을 켜고 맞을 수 있습니다.
눅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9,9.~1910,11,20.]의 작품 「인간이 무엇으로 사느냐?」 의 소설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하엘이라고 하는 천사가 하나님의 명을 어긴 죄로 말미암아 지상으로 쫓겨 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여 구두 수선공이 되었는데, 어느 날 잘 생긴 신사 한 사람이 찾아와서 돈과 구두를 맡깁니다. 그리고는 내가 타국에 갈 일이 있는데 일 년 동안 신을 신이니 튼튼하게 가장 좋은 구두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천사 미하엘이 깜짝 놀랍니다. 이 신사 바로 앞에 죽음의 천사가 지키고 있어서 곧 데려가려고 대기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사는 자기가 죽을 것을 모르고 일 년 동안 신을 구두를 부탁합니다. 이때 미하엘은 깨닫습니다. 아, 사람들은 자기 죽을 날을 모르는 구나. 예, 그 누구도 자기 죽을 날을 모릅니다.
스바냐는 불신자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려운 날 분노의 날 심판의 날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는 날이라고 안내합니다. 마지막 그 날 심판의 날에 나는 주님 앞에 설 믿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까?
혹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선언의 대상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까?(마 25:30)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마지막 환난과 두려움 앞에서 이 소리 안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계 06: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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