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앞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많은 사람이 찾는 넓은 길과 소수의 사람이 찾는 좁은 길입니다(마 0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맞이하는 생명의 길과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맞이하는 사망의 길 이 두 가지는 어느 쪽이든 자유의지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좁은 문처럼 보여 찾는 사람이 적을지라도 이 길의 마지막이 생명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라면 좀 힘들지라도 계속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만일 인내심이 중단되어 중간에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 무너짐이 마지막에는 믿음의 파선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있는 믿음, 오늘 말씀을 들은 후 은혜로 결실하는 믿음이 되려면 우리의 신체 5대 부위가 활짝 열려야 합니다.
첫째 입이 잘 열려야 합니다. 아멘을 잘 할 수 있는 입말입니다. 둘째 눈이 잘 열려야 합니다. 성경을 잘 보는 눈 말입니다. 셋째 귀가 잘 열려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귀 말입니다. 넷째 머리가 잘 열려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잘 이해하는 두뇌 말입니다. 다섯째 마음이 잘 열려야 합니다. 마음이 열려야 성령님이 역사하여 은혜받은 새사람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으로 잘 출발하였다가 마지막에는 믿음의 파선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인생을 믿음으로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주제로 착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합니다. 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믿음의 사람은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바울은 믿음의 아들로 삼은 디모데에게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이란 말을 상기시킵니다. 전에 지도한 예언의 의미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예언(προφητείας)이란 디모데가 목회자로 임직받을 때 바울을 통해 권면한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의 내용이 기록으로는 존재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디모데 사이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역의 사명을 부여받은 디모데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권면한 하나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으로 사명 잘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디모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사명 잘 감당합시다.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좀 넓게 생각을 해 봅시다.
구약성경 대부분이 싸움의 기록입니다. 주로 이방인과 싸움의 기록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싸움은 주로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세상은 싸우지 말자고 평화를 외치는데 성경은 싸우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이런 모순 같은 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유 01:03….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싸움은 세상 방법처럼 사람을 해치는 병기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싸움입니까? 선한 싸움입니다. 바울은 이 싸움에 대해서 18절과 딤전 06:12 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싸움의 또 다른 의미는 악한 싸움도 있다는 뜻입니다.
싸움의 상대는 마귀와 그 영역인 세상입니다. 선한 싸움은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말싸움이나 물리적 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복음의 대적자와 싸움입니다. 이런 세력은 여러 형태로 우리를 도전해 옵니다.
부드러운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응원군의 모습으로 찾아도 옵니다. 때로는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 물질, 좋은 직장 등으로 부드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대적자인지, 도우려는 모습인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합니다. 동시에 자신도 믿음의 싸움을 이렇게 싸웠다고 간증을 합니다.
딤후 0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04:0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0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하였으므로.
2. 착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합니다. |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破船)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양심을 사용하십니다.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의 양심도 사용하여 진리의 사람, 성령의 사람, 복된 사람을 만듭니다. 성경은 양심에 대해 여러 교훈을 소개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히 13:18, 딤전 01:19), 타인의 양심을 상하게 말라(고전 10:28), 하나님과 사람 앞에 흠 없는 양심을 가지라고(행 24:16).
양심은 아담과 하와에게 역사하였고, 가룟 유다에게도 역사하여 깨우쳤으나 모두가 양심의 소리를 배척하였기에 불행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행동을 점검하는 판사로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양심을 주셨기 때문에 양심은 지금, 이 순간도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드나듭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이들은 이 착한 양심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으로 거듭난 도덕심 말입니다. 이 착한 양심이 선과 악을 분별합니다(롬 02:09~15). 죄를 책망합니다(요 08:09). 마음을 깨웁니다(롬 09:01, 02).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잡이가 됩니다(벧전 03:21). 바울은 디모데에게 착한 양심을 잘 관리하라고 명합니다.
왜냐하면 이 양심이 우리를 격려도 하고 책망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양심이 착한 양심이고, 어떤 사람의 양심이 악한 양심입니까? 선한 싸움의 도구인 착한 양심은 믿음과 함께 본서에 두 번 더 나오는데(01:05 청결한 양심과 03:09 깨끗한 양심) 신앙인들이 믿음의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건강한 신자에게는 동반자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믿음 있는 곳에 양심이 있고, 양심 있는 곳에 믿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착한 양심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착한 양심에 위반하는 생활, 진리를 거슬리는 자들을 떠나라고 권합니다(롬 16:17, 살후 03:06). 떠나라는 말씀은 믿음의 생활에 암적 요소가 되는 요소를 멀리하라는 뜻입니다.
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끝없이 커집니다. 계속 전이됩니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착한 양심을 버리는 것은 곧 암적인 요소를 생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파선이 무엇입니까? 배가 깨지는 것으로서 배가 깨지면 물이 들어와서 마지막에는 가라앉고 맙니다. 믿음의 파선은 그 속에 착한 양심이 없으므로 인하여 온갖 세상의 물결이 가득 들어와서 믿음의 요소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에 손해를 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습니까? 착한 양심을 버린 사람입니까? 전도 차원에서는 가까이하되 교제의 차원으로는 멀리하십시오. 이미 파선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속담에 믿음이 없는 것은 고삐 없는 말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의 처지에서 고삐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고삐 덕분에 말은 바른길로 달릴 수 있습니다.
말이 고삐의 인도를 받듯 성도는 믿음의 고삐에 이끌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세상의 차원에서는 재미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멍에를 벗어던지면 파선에 이르러 마지막에는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3. 믿음이 파선한 사람이 있습니다. |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사탄에게 내어 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어떤 사람입니까? 19절에 의하면 믿음의 파선을 당한 사람입니다. 후메내오를 봅시다. 이 사람은 이단의 교사로서 에베소교회에서 제명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 이단 설이 어떤 내용입니까? 신자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악성 종양 같은 설입니다. 신령한 면에 큰 피해를 주는 설입니다.
딤후 0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초대교회 시절 그리스도의 육신의 죽음과 부활하신 역사를 부정한 이단들 가운데 대표적인 무리가 영지주의자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복음을 훼방하고 신자들을 유혹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나갔다고 한 후메내오의 말은 기독교의 차원에서 보면 종양 중의 악성 종양이고 결국 영지주의자의 길입니다. 착한 양심과 믿음에서 파선하면 이렇게 됩니다. 알렉산더를 봅시다.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는 행 19:33과 딤후 04:14설에 언급된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행 19장의 알렉산더(Calvin)는 바울이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갔을 때 바울을 많이 도왔던 인물이고, 딤후 04:14 절의 알렉산더는 구리 세공업자로서 잘 믿다가 종교를 저버려 나중에는 바울의 재판정에서 불리한 증언(證言)을 한 사람입니다.
이 둘 가운데 잘 믿다가 파선한 사람은 행 19:33 절의 알렉산더로 봅니다. 이 알렉산더가 에베소에 살았고, 처음에는 열심이었다가 믿음에 파선하였습니다. 지금 디모데가 에베소로 가는 것 등을 연관시킬 때 큰 무리는 없습니다. 믿음의 파선이란 처음과 같은 자세로 끝까지 가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항해로 말하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데 중도에 큰 폭풍을 만나 좌초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믿음에서 파선한 이 두 사람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이단자인 만큼 교회에서 출교(黜敎)하였다는 뜻으로서 교회에서 쫓아내었기 때문에 그 시간부터 주님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영역으로 내어 준 결과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습니까? 징계의 목적은 더는 주님의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징계의 목적은 당사자를 회개시키는 데 있습니다.
복음이나 교회에 훼방이 돌아가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마 18:15~17을 보면 주님께서 사랑으로 징계를 하는 절차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 주셨습니다.
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➊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➋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➌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➍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사탄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 08:32).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속한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05:01)고 하였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착한 양심을 가졌습니까? 그 착한 양심을 관리하지 못하면 믿음도 흔들리어 세상의 바다에서 파선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마귀가 양심의 공장을 돌리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갈 05:19~21) 나옵니다.
성령님께서 양심의 공장을 돌리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05:22, 23)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인생을 설계하지 못하면 마귀가 양심의 공장을 돌려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으로 인생을 잘 디자인 하면 성령님이 양심의 공장을 돌려서 행복에 이르게 합니다. 어느 쪽이든 내가 결정을 하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착한 양심을 잘 관리하고 믿음이 파선되지 않도록 은혜 생활 잘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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