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폐하, 잘 된 일입니다. 라고만 말하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과 그 신하가 함께 사냥을 하러 갔는데 신하가 왕의 총에 총알을 거꾸로 장전해 놓은 바람에 왕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갔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말합니다. 폐하, 참 잘 된 일입니다. 왕이 심히 분노하여 그 신하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듬 해 왕이 다시 사냥을 나갔는데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 식인종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식인종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왕의 손가락이 하나 없는 것 아닙니까? 음, 이 음식은 흠이 있군, 하고선 왕을 풀어주었습니다. 식인종들에게 풀려난 왕이 감옥에 가서 그 신하에게 말합니다. 자네 덕분에 살았어. 미안하네. 그러자 신하가 또 말을 합니다. 폐하, 참으로 잘 된 일입니다. 제가 감옥에 안 들어왔으면 폐하와 같이 사냥을 나갔을 것이고 저는 흠 없는 음식이 되어 저들의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이야기를 아시죠?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던 그 때에,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생활하던 그 때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던 그때에 누가 과연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의 가족을 7년간의 기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은 요셉을 미리 애굽으로 보내어 기근에 대비하게 하시고, 야곱으로 출발한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430년이 지난 후에야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사는 동안에 형통한 날도 주시고 곤고한 날도 주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 결과를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고 말을 하잖습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시는 두 가지 일 곧 형통함과 곤고함이 반복되게 하시는 일에 대하여 안내를 합니다. 형통할 때와 곤고할 때 각각 어떻게 마음가짐과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행동 지침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십시오. |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형통(亨通)한 날이란 번영의 날, 일들이 잘되어 가는 때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에 만족할 만한 그런 좋은 때를 말합니다. 형통한 예를 들어볼까요? 개인적으로는 영적으로 평안함을 누리면서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사업이 왕성하고, 가정이 화평하고, 가족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은총을 누리는 때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정치가 안정이 되고, 경제가 잘 돌아가고, 세계 속으로 평화의 교역이 이루어져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통한 날을 주신다고 했으니 형통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 아닙니까?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셈이죠.
이렇게 형통한 때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에 주시고 나 자신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나는 형통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집니까? 그러면 믿음으로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비우십시오. 어쩌면 받았는데도 나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받지 못한 것처럼 여기는 마음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실제로 받지 못한 분도 있을 것이나 받지 못했다면 이 시간 나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에게도 형통함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로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형통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형통함을 주시는 것 같습니까? 형통할 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기뻐하라고 하시죠? 그러면 당연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기뻐하라는 말은 좋은 때는 좋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형통하다고 해서 먹고, 놀고, 마시고 인생을 세상적으로 엔조이하는 그런 향락적인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형통한 날에 기뻐하는 것은 일이 잘되어 갈 때, 그리고 성공했을 때 바로 믿고, 내용 있게 살고, 값있게 일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기쁨 그것은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형통의 날을 기쁘게 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종종 형통하다고 느껴질 때를 방종과 불신앙과 낭비로 인생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육신적으로 좀 안락한 시기를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시절을 만났으면 또한 좋지 못한 시절도 올 줄 알고 대비해야지 않겠습니까? 형통할 때 기뻐하라는 말씀은 사업이 잘 될 때 정신 차려서 바로 믿으라는 것이고, 몸이 건강할 때 정신 차리고 바로 예수님을 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통한 날을 만날 때 ①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②역경의 때를 준비하여야 하고, ③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고, ④계속해서 복을 증가시켜 나가야 하고, ⑤자기 삶의 존재 가치와 목적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전 0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우리에게 형통이 왔습니까? 그럴 때 혹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형통함을 주셨다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형통 할 때에 곤고한 날이 올 것을 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날들을 우리 일생의 최후의 날과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형통의 날을 기쁨으로 선용하라는 뜻이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웃의 구제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을 활용하되 지금까지 나만을 향하고 생각하던 것을 이웃에게 기쁨으로 나누라는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합니다. 형통이 매일같이 유지가 되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 형통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세요. 형통한 일에 이어 곤고한 날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곤고한 날이 올 것을 말하는 것은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고민이라고 모두 부질없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마땅히 해야 할 고민이 있는데 이런 고민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민으로서 이런 고민으로 인해 사람은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2.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십시오. |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곤고(困苦)한 날이란 모든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아서 겪는 역경과 고난의 때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환난과 고통의 때, 슬픔과 괴로움의 때인 셈이죠? 불치의 병에 걸리는 일, 전쟁의 재난에 휩싸이는 일,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 대학 진학에 실패하는 일, 가족이 불행을 겪는 일, 바울처럼 매를 맞는 일, 감옥에 갇히는 일 등. 사람이 곤고한 날을 만날 때는 자신의 무능을 보고, 한계를 보고,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동안 곤고한 일이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곤고한 일을 만날 때 되돌아보라고 합니다. 무엇을 되돌아보라고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 안 보였던 것들,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기도하는 가운데서 돌아보라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고난은 계속 내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①첫째, 곤고함 속에서 죄인 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밖에서 찾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곤고야말로 자신을 살피는 절호의 기회 아닙니까? 이 곤고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인지, 겸손하라는 것인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인지 그 뜻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 올 때 그것이 나의 허물 때문에 오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나를 믿음의 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양자를 잘 분별하여 처방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둘째, 곤고함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곤고함이 찾아 올 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입니다. 곤고함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연약함을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만약 곤고함을 통하여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만들고, 나를 반성하게 만들고, 나를 뉘우치게 만든다면 곤고한 날은 나에게 화가 아니라 복이요,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③셋째, 곤고함 속에서 이웃을 외면하며 살았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평안할 때 고난당하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나만 생각하며 살았던 일들은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사람이 자기 배가 부를 때는 남의 배고픈 사정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들 가운데 내가 서 있었던 것이 아니냐 말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면서 비로소 고난을 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정 할 수 있고, 그 이웃 앞에서 겸손하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④넷째, 곤고함 속에서 주님을 잊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계속 곤고함이 나를 아프게 합니까?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고난이 아니라 자기 몸에 부어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고후 01:05). 히 12:0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에게 여러 일들을 돌아보는 깊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색이 아니라 단순하게 깊이 생각하는 사색 말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고, 히스기야 왕이 죽음의 병에 걸렸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고, 모세가 피난을 갔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길이 마지막이 아닌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시 30: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왜 하나님께서 사람의 장래 일을 모르게 하셨을까요? 몰라야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죽을 날이나 타인의 죽을 날을 미리 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큰 혼란만 일어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재림 날짜도 그래서 비밀에 붙인 것입니다(마 24:36). 사람은 자기의 미래를 알아버리면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소망을 두지 않을 것이며, 또 불행한 미래라면 온갖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공포로만 가득 찰 것입니다.당연히 절망을 하겠지요.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미래를 사람에게 미리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장래 일을 예언하는 종이라고 떠드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는 아주 연약한 자가 아닙니까? 형통함이 나를 찾아 올 때와 곤고함이 나를 찾아 올 때를 대비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성공과 실패, 형통과 곤고 이 두 가지를 고정을 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반복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계속되는 형통이 없고, 계속 되는 곤고가 없다는 말입니다. 곤고함이 나를 둘러쌓았을 지라도 잠깐 지나가는 곤고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이 때를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신 08:0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0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0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그러므로 형통할 때에는 기뻐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활용하고, 또 곤고한 날을 만날 때는 믿음으로 형통의 길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왜 내게 곤고가 왔는지, 이 곤고를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날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김삼일 가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1.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2. 힘이 없고 내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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