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예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요 20:19~2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8. 31. 15:10
728x90

지난주는 중동지역 시리아 내전과 화학무기를 사용한 일로 공습할 것이라는 혼선된 정보 때문에 중동지역 전체가 불안감에 싸여 있었습니다.

현재 시리아 내전이 세계 불안 조성 1위입니다. 이 시리아 내전은 2011315일 전국에서 시위가 발생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시위의 발단은 학생들이 시리아 남부에서 재스민 혁명과 관련된 구호를 벽에 써 놓았다는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체포되고 고문을 받자 시민들은 학생들의 석방과 민주주의와 자유의 보장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다지 반정부 시위도 아닌 평화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1971년부터 장기 집권을 한 알아사드 정권은 2011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를 거친 민주화 바람이 시리아에도 분다고 여겼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의 시위를 반정부 시위로 규정하였습니다. 정부군이 시위대에 총을 쏘는 과잉 대응으로 내전이 전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현재까지 10만여 명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추정합니다그러다 이번에는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화학무기까지 사용하였습니다.

 

결과는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저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일어날 일인가 싶어서 말입니다화학무기까지 사용한 것은 세상에 재난이 닥친 것이고 평화가 파괴된 것 아닙니까?

 

지금 시리아 국민은 밤낮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데 속히 평화가 회복되어야 합니다그러면 왜 이런 불행한 사태가 계속 일어날까요?

모두의 심령에 평안이 없고 믿음이 파선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회복하지 못하면 계속 이런 사태가 일어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였지만, 이 사실을 제자들이 다 제대로 실감 나게 알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다는 문구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현재 불안에 매우 떨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불안에 사로잡히면 자기의 입지가 움츠러들며, 은둔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이때부터 우울증의 시초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성격과 용기가 어느 정도인지 또 위기를 만나면 잘 차고 나갈 수 있는지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평안입니다. 혹은 평강으로도 번역되는 이 말은 히브리말로 살롬(שָׁלוֹם)이라고 합니다.

이 살롬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담고 있는 단어로서 안녕, 평화, 행복, 안전, 만족을 담고 있는 최상의 상태입니다. 세상 사람은 편안하기를 원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환경이 좋고 돈이 많다고 다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물질 공급으로 육체가 누리는 차원은 편안입니다. 심령에 신령한 은혜가 공급됨으로 마음과 영혼이 즐거움을 누릴 때 평안이라고 합니다그러면 세상에는 왜 참된 평안이 없습니까?

그토록 갈망하고, 평화와 평안을 위한 많은 조약이 체결되고 유엔까지 창설되었음에도 날이 갈수록 불안합니까? 전쟁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사람들 입에서 평안하다는 말은 왜 들리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현재 우리가 겪는 큰 고통, 평안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갈등과 방황 그리고 두려움과 염려입니다. 이런 것은 평강을 거역하고 삶을 혼란케 하는 마귀의 장난입니다.

 

20005월 무렵 아랍권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200411월 사망)와 이스라엘 수상 예후드 바라크가 미국의 메릴랜드주에 있는 캠프데이비드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평화 회담했습니다.

이 만남 자체가 아주 중요한 상징을 지니는데 무려 15일 동안이나 길게 회담했지만 특별한 결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서로 간의 이해타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헤어지며 나눈 인사말이 shalom입니다. 평강이란 말로서 평화를 위해 계속 노력해보자는 뜻입니다. 불안한 세상을 한 번 평화의 물결로 만들어 보자는 그런 의미입니다.

 

모든 면에서 풍요가 넘치는 나라를 그래도 미국이라고 합니다. 흔히들 잘 사는 미국에서 수면제가 일 년에 얼마나 팔릴까요? 700억 개 정도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하루에 1,900만 개 정도인데 매일 1,900만 명이 괴로움과 불안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염려와 근심이 내 힘으로 잘 해결됩니까? 주님께 맡겨야만 해결이 됩니다.

 

벧전 05:0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2. 주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ἐιρήνη) 있을지어다. 이 평강은 살롬(שָׁלוֹם)과 같은 의미의 인사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이런 인사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염려 마시오, 마음 편히 가지세요, 걱정하지 마시오. 입니다. 공포에 빠진 제자들에게는 더욱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많은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어떤 비전도, 미래의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만은 제자들에게는 평안함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니 이 일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였음에도 확신이 없는 반신반의의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 주시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믿음에 의한 큰 선물입니다.

 

Joshua Loth Liebman(, 1907~1948) 소설가가 쓴 마음의 평안이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젊은 주인공이 한 노인을 찾아갔는데 그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젊은이가 말합니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미모, 넷째는 재능, 다섯째는 권력, 여섯째는 명예입니다. 그러자 이 청년을 바라보던 노인이 말합니다. 청년, 그러나 평안이 없으면 아무것도 즐길 수가 없다네.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평안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한데 그중에 돈, 명예, 권력, 인기, 학벌, 건강은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나 평안이 없이 돈만 있으면 뭐 합니까? 평안을 상실한 채 인기가 많고, 평안을 상실한 채 권력을 소유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한 채 명예를 가지고 있으면 뭐 합니까?

평안은 삶의 근원입니다. 이 평안을 잘 유지하여야 행복이 찾아옵니다유대인들은 평안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살롬, 하고 인사합니다.

 

평안을 유지하기만 하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그러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사람들은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실상 행복은 자기 내면, 심령의 평안에 존재합니다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죽어서 천국 가는 복도 있지만 지금 주님이 주시는 심령의 평안함을 누림으로 오는 고요함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이렇게  말합니다.,

 

살후 0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3.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의 평강을 받읍시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는 19절의 평강과 같은 의미이나 19절의 평강은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와서 위로하시는 평강입니다.

그리고 21절의 평강은 이제 제자들이 파송을 받아 복음을 전파할 때(20) 당할 환난에 대하여 흔들리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사역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흔들리지 말기를 바라는 뜻에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으니 이제부터 나도 믿음 생활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나도 너희를 부활의 증인으로 보낸다는 말씀을 따라 제자들은 선교의 사명, 복음의 사명을 위임받았습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복된 소식으로서, 결국 복음은 평화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엡 06:15에 복음을 평안의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평안의 소식이라면 이 말씀을 받는 사람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김삼일 가족은 열심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을 살리는 운동에 집중해야 합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평안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평화를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내가 책임을 지고 뒷받침하시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는 것이 무엇이며,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게 무엇입니까? 또 받아들인다는 게 무엇입니까? 진리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거기에 내 인생을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사 26:0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성도 여러분, 돌아봅시다. 믿음의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여 혹 흔들리는 상황에 있지는 아니한가를 말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확고한 목적의식이 없으면 이리저리 끄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결국은 흔들린다는 사실 잘 아시지요.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또 저 말도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중심 없이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자신만 믿음의 손해를 당하는데 이런 일 우리 많이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믿음의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흔들리는 생각이 혹 마음에 자리 잡으려 할 때 과감하게 잘라 버리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휘청거리는 사람은 항상 불안한 것 잘 아시죠. 이런 사람은 안정이 없으나, 믿음의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가 인간관계를 나눌 때 어떻습니까? 믿음의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이럴까 저럴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무엇인가 은근히 불안해집니다이 시간 이걸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내가 안정되어 평강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내 가정도, 내 이웃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골 0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생각해 보면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고, 평안을 준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은, 문 잠글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잔다는 사실 아시지요? 반면 많이 가진 사람은 담을 높이 쌓고, 가시철망을 씌우고 삽니다.

거기다 경비견과 경비원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삽니다. 이 시간 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①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네. 주는 내 마음에 구주되시었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주님이 날 구하시네.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②평화 없는 세상 고통과 싸움뿐, 사람들 모두 두려워해. 평화의 주님이 다시 올 때까지 죄와 전쟁은 끝이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주님이 날 구하시네.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