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2일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형법이 개정되면서 바로 재판이나 수사에 관여하는 공무원이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하여 부당한 결과를 만들 때 무겁게 처벌하는 법 왜곡죄가 시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이나 판사가 법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법 왜곡죄는 형법 제123조의2(법 왜곡)에 자세히 나오는데 일반 소시민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죄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함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거나, 적용되어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지 아니하여 의도적으로 재판 및 수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다만,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재량적 판단은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2.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된 증거를 그 정을 알면서 재판 또는 수사에 사용한 경우
3. 폭행, 협박, 위계, 그 밖의 방법으로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아니함을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하였으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 법이 공포되자 당장 이병철 법무법인 아이에이 변호사는 지난 12일 조** 대법원장과 박**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형법 제123조의2(법 왜곡죄)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총독 빌라도가 법 왜곡죄에 해당하는 굽은 재판 한 일을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의 절기로 맞이한 오늘은 종려주일(棕櫚主日)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일과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생각하는 시간 가집시다. 저는 신설된 법 왜곡죄를 생각하면서 말씀 제목을 「빌라도는 굽은 재판을 하였습니다.」로 정했습니다.
| 1.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가 누구입니까? |
0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예수님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진 빌라도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에게 온갖 회유로 협박한 직권 남용자입니다. 영원한 저주의 자리를 택한 인물입니다.
Pontius Pilatus(B.C. 1세기~A.D. 39)는 이탈리아 남부 산악 지대 삼니움(Samnite) 부족 출신입니다. 로마 사회의 중상류 귀족, 기사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군인의 길을 걸은 빌라도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옥타비아누스의 양아들이며 로마의 제2대 황제 B.C. 42년~A.D. 37년)의 측근 세야누스(Sejanus)의 추천으로 유대의 제5대 총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관할 구역은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로 총독 임기는 관례상 3년입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이례적으로 빌라도에게 A.D. 26년부터 36년까지 10년간 총독직을 맡겼습니다. 티베리우스가 얼마나 신뢰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빌라도의 강경한 통치가 황제의 뜻에 맞은 셈입니다.
총독으로 부임한 빌라도는 우선 ➊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군기(軍旗)를 들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행위를 우상 숭배로 인식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즉시 수천 명의 유대인이 총독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로 몰려가 5일 동안 밤낮으로 항의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이에 학살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목을 내밀자 결국 빌라도는 군기를 철수하며 물러섰습니다.
이어 빌라도는 ➋예루살렘 수도(水道) 건설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금고(성전세)를 무단으로 끌어다 사용했습니다. 이 일을 유대인들은 신성한 종교 자금을 침탈한 것으로 알고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군사들을 사복으로 위장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습니다.
계속 빌라도는 ➌종교의 금기를 무시하고 로마 황제의 이름과 이방 신상이 새겨진 동전을 주조하여 유통했습니다. 이 일 역시 유대인들의 반로마 정서만 자극할 뿐이었습니다.
계속 빌라도는 ➍갈릴리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일도 반역으로 보았습니다. 즉각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그 피를 제물에 섞는 만행까지 벌였습니다(눅 13:01).
또 빌라도는 ➎예루살렘 헤롯 궁전에 황제에게 헌정하는 황금 방패를 설치하였습니다. 이를 안 헤롯의 아들들이 티베리우스에게 탄원하여 방패를 가이사랴로 철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일로 빌라도는 위신과 체면이 추락하여 완전 신경질적 환자로 변해갔습니다. 사실 로마 귀족이 유대의 속주(屬州)인 유대 땅으로 발령받는 것은, 고위 관료로서 말도 안 통하는 험지의 변방으로 좌천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빌라도의 꿈이 있다면 사고 없이 임기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중앙 정치에 진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과정에서 조울병 환자 수준으로 변해갔을 것입니다. 그의 근무 환경을 보면 병적 수준 상태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문화의 고립주의에 처해 있는 셈입니다.
빌라도는 화려한 로마와 그리스 문화를 누리던 엘리트입니다. 그에게 유대 땅은 최악의 근무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황제의 신뢰를 받아도 고립된 삶은 고통입니다.
음식과 문화면에서 보아도 유대인은 돼지고기 안 먹고, 안식일이 되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자기들의 유일신만 고집하니 로마인의 눈에는 고집불통 야만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운 로마의 대중탕과 대극장, 세련된 사교 모임은 더욱 향수병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헤드린 공회의 반발은 견디기 힘든 직무일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유대 지역은 로마제국 내에서 최고의 반란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조금만 심기를 건드려도 민중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총독으로서 사고가 터지면 로마 황제에게 무능하다는 소리를 번번이 들어야 했습니다.
빌라도는 스트레스로 인해 예루살렘 기득권 사제들과 계속 충돌하였습니다. 사제들 역시 빌라도의 통치 방식에 사사건건 토를 달면서 빌라도의 잔인성만 계속 드러났습니다.
| 2.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을 사형으로 판결하였습니다. |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재판받던 당시 예루살렘은 큰 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매우 들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명절을 누리기 위하여 전국에서 예루살렘으로 집결하였습니다.
유대인 최고 명절인 만큼 빌라도는 만일의 폭동을 대비하였습니다. 가이사랴의 총독 관저를 떠나 직접 예루살렘 내의 총독 집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사형 집행권이 없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와서 사형을 집행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총독의 사형 집행권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제거하는 빌라도의 재판 과정을 보겠습니다.
제1단계는 첫 심문으로서 예수님을 직접 심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할 만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2단계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출신이므로 담당 지역 헤롯에게 넘겼습니다(눅23:07).
제3단계는 명절 특사로 두 사람을 놓고 한 사람을 선택하여 석방하는 관례에서 빌라도는 내심 예수님을 석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예수님 석방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강도 바라바를 유월절 특사로 석방하였습니다(막 15:15).
제4단계는 예수님을 힘껏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워서 홍포를 입혀 희롱하였습니다(마 27:31). 제5단계는 최종 판결로서 석방하면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사형을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제스처로 손 씻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세 차례에 걸쳐 무죄 선언을 하였습니다(요 18:38, 요 19:04, 마 27:23).
다시 10절로 돌아갑시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현장입니다. 빌라도의 심리 상태와 복잡한 심경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의 말을 다시 봅시다. 너는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가 자기의 자존심을 살짝 굽히는 말입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침묵하시자 조급함을 나타내 보입니다.
겉으로는 은근하게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나를 설득할 마지막 기회가 아니냐? 왜 아무 말을 하지 않느냐? 네 운명이 내 손에 있으니 말해 봐라. 왜 이 좋은 기회를 날려 버리느냐? 이 말에서 빌라도의 불안함과 조급함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이 있다는 빌라도의 말을 보십시오. 나는 유대의 통치자다. 너의 생사여탈을 가진 통치자다. 이런 의미입니다. 나에게 딱한 사정을 아뢰어야지 왜 가만히 있느냐? 왜 내 권위에 따르지 않느냐? 라는 자존심 상해하는 말입니다.
앞선 구절 07~08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강력한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합니다. 이제는 총독의 자리 지키는 일도 불안합니다. 거기다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불안한 빌라도의 심경을 간접으로 밝히는 한 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과 십자가 사건과 관련하여 황제에게 보고한 빌라도의 보고서입니다.
형식상 법정에서 작성된 공문서로 현재 터키의 성 소피아 사원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건을 놓고 체포, 심문, 처형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한 외경(外經) 수준의 문서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빌라도가 황제에게 그의 심경을 이렇게 밝힙니다.
황제여, 제가 예수를 만난 순간 그가 가진 초월적 권능과 고요한 위엄 때문에 압도당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 자연을 다스리는 힘을 목격하며 예수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였습니다.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두려워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압력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겼지만, 그의 내면에는 깊은 혼란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3. 빌라도는 영원한 심판의 자리로 갔습니다.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가 세상에서는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의 현실 여건을 보면 백 년 안쪽의 삶을 살다가 때가 되면 제 곳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어 주신 것은 구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함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요 18:38). 그러나 빌라도는 이 진리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갑의 위치에서 물어보고도 진리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요 0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빌라도가 유대에 총독의 직책을 받고 부임하였지만, 그 좋은 기회를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하던 사람입니다.
자기의 힘을 그렇게까지 뽐내던 빌라도가 영생의 기회를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단순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신적인 어떤 존재라고 인식하여 황제에게 보고서까지 내었지만, 결국 가룟 유다처럼 제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영생의 기회를 무심하게 차 버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사형을 판결하기 전에 자기의 마음에 호소하는 특별 기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서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 급히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핵심 내용이 이렇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십시오.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심히 애를 태웠습니다. 괴로웠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옳은 사람의 의미를 봅시다.
마 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옳은(δικαιος, 디카이오스) 이 말은 단순히 죄 없다. 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분, 이런 표현입니다. 빌라도의 아내 이름이 혹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후대 기독교 전승은 클라우디아 프로쿨라(Claudia Procula 또는 Procla)라고 합니다.
초기 교회 문헌과 전승에서 등장하며 특별히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인으로 인정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의로운 자로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꿈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이런 꿈은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 혹은 계시의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전해진 이 꿈 메시지는 하나님의 뜻이 이미 이방 세계에도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꿈으로 빌라도가 갈등하다가 결국 무시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민란 가능성을 두려워하여 바라바를 석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한 후 물로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이 말을 한다고 책임이 없어집니까? 이 비겁한 행위는 이후 사도신경 형성 과정에서 빌라도의 이름이 저주의 자리에 오르는 길이 되었습니다. 빌라도가 직접 선택한 비극입니다.
예수님을 살릴 수 있는 권한과 죽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불의의 재판을 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권한을 남용한 결과는 영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향하여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막14:21). 이 말씀이 빌라도에게도 해당하였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세상의 권력, 진리를 외면하면 까지 선택한 세상의 권력이 이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불행한 사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A.D. 36년 그리심산에서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빌라도의 직접 파면 원인이 된 일입니다. 그리심산은 성경에서 축복과 관계가 된 산으로 나옵니다.
오늘날 나블루스(옛 세겜) 남쪽에 있는 높이 약 870~880m의 복을 상징하는 산입니다. 그런데 어떤 거짓 선지자가 그리심산에 모세가 숨겨둔 성소 기물이 있다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마리아인이 이를 찾으러 모여들었습니다. 빌라도는 이 일을 반란으로 판단하고 즉각 군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한 진압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분노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를 관할하는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 비텔리우스(Lucius Vitellius)에게 항의하였습니다.
비텔리우스는 빌라도를 즉시 해임하고 로마 황제에게 보고하여 소환하게 했습니다. 빌라도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티베리우스 황제는 이미 사망하였습니다(A.D. 37년). 그를 지지하던 후견인이 사라진 셈입니다.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타키투스의 기록을 종합해 살펴보겠습니다.
교회 전승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①서방 전승은 죄책감과 정치의 실패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②프랑스나 스위스 지역 외딴곳으로 유배되었다는 이야기와 로마에서 처벌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③동방 전승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클라우디아 프로쿨라)가 나중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전합니다.
신학의 관점에서 빌라도의 결말이 분명히 기록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의미가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한 사람의 끝은 우리가 판단하면 됩니다.
빌라도만 법 왜곡죄를 지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 굽은 판단을 잘합니다. 나는 진리를 알고 따르는 삶을 삽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모든 일을 바르게 잘 판단하는 신뢰의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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