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4년 말씀

왜 하나님께서 치십니까? (대상 13:01~1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8. 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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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국가가 아니면서도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기도로 회의를 시작한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 역사의 주인공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이윤영 목사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이승만 의원이 임시 의장이 되어 국회를 개회하는 과정이 대한민국 제헌국회 제1차 회의록에 나와 있습니다.

임시 의장 이승만 의원이 의장석에 등단하여 전 국회의원에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이어 서울 종로에서 당선된 목사 이윤영 의원으로 기도하게 했습니다(1948, 5, 31).

 

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는 성심으로 감사 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평소 신앙 입국을 꿈꾸며 기도하던 이승만 장로와 이윤영 목사를 도구로 사용하여 성령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다윗 왕을 볼까요? 35만 명이나 되는 군대가 추대하여(대상 12:22~40) 왕으로 즉위식을 마치고 국가의 공적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최 우선순위로 삼은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왕궁으로 모셔 오겠다는 선포입니다. 그곳에 모인 백성들도 좋다고 화답하였습니다(03, 04).

그러나 법궤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사람이 법궤를 싣고 가는 소가 뜀으로 인해 법궤가 수레에서 땅으로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때 호송 책임자 웃사가 떨어지는 법궤를 보호하기 위해 손으로 잡자 그만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10).

이 사건을 역사에서 베레스 웃사라 합니다. 웃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서 하나님께서 치셨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왜 하나님께서 치십니까?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셨습니다.


09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다윗은 국가의 보물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 거리가 15km입니다. 이 일을 위해 무려 3만 명을 동원했습니다(삼하 06:01). 법궤는 이스라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법궤를 옮기는 데 사용할 멋진 새 수레와 함께 수레를 끌 황소도 준비하였습니다. 이만하면 준비는 잘 된 것 같습니다. 수금과 비파와 양금과 제금으로 노래하며 춤추게 하는 행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이니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 당연히 들여야 합니다. 예전부터 법궤 때문에 승리하였고 기적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도 법궤를 앞세우고 건넜더니 물이 갈라지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03:16, 17).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법궤를 길갈에 보관했습니다(07:06). 다음에는 벧엘에 있다가 마지막에는 실로에(삼상 03:03)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벡 전투에서 당시 제사장이며 지도자인 엘리 때에 블레셋에게 패전함으로 인해 법궤가 블레셋 진영으로 넘어갔습니다(삼상 04:01~11). 블레셋 군대는 법궤를 빼앗아 온 것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 다곤이 하나님을 이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전에  나가보니 오히려 다곤 신상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삼상 05:01~04). 이뿐만이 아닙니다.

블레셋 전역이 재앙을 당합니다. 그러자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냈고 돌아온 법궤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서 무려 70년이나 머물렀습니다(삼상 07:01).

 

안타깝게도 다윗이 이 법궤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여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여 베레스 웃사의 비극을 만났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법도를 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법궤는 레위 지파 가운데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가게 되어 있습니다(04:15, 07:09).

 

민 04:15….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웃사는 법도를 지키지 않고 고핫 자손이 메고 가야 할 일을 수레에 싣고 가는 식이었습니다. 외형으로 보기에는 아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이 중요한 일을 성경 법도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편리함 때문에 원칙과 법도를 생략하였습니다.

09,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는 웃사 일행이 기돈(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갑자기 소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웃사가 하나님의 궤가 떨어질 것 같아서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칭찬 들을 만한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있었어도 웃사처럼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즉시 진노하여 웃사를 치셨고 웃사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삼하 06:07).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잘한 일이요 칭찬받아야 할 일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죽어 마땅할 정도로 잘못된 행동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웃사는 레위 지파 출신입니다. 그의 집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를 섬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치시다니요?

이럴 때는 하나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법을 위반했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이 법궤를 메고 가는 원칙을 생략하였습니다.

 

수레에 싣고 끌고 가는 편리함을 택하다 그만 베레스 웃사가 왔습니다? 사실 웃사는 법궤를 고핫 자손이 메어야 하고 성물도 만지면 안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04:15). 아론의 후손이요 고핫 자손은 이런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법궤는 자기 아버지 집에 있었고, 자기도 법궤 곁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고가 난 것은 법궤 옮기는 일을 안일한 사람의 생각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멜 채가 옆에 있는데도 수레에 싣고 제사장 대신 황소가 끌게 했습니다. 신령한 일에[ 어두운 탓입니다.

 

 

2. 하나님께서 치시면 하나님의 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12 그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 메어 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니라.

 

웃사의 행동에 다윗 왕은 화가 나서 그곳을 베레스 웃사(פֶּרֶץ עֻזָּא)라고 하였습니다. 웃사와 하나님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두려워졌습니다. 당분간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보냈습니다. 임시 보관하게 한 셈입니다.

그리고는, 석 달 뒤 다윗 왕은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이기 위해 성경의 원칙대로 계획을 세우고 법궤 옮기는 일을 실행합니다. 전과 달리 거룩한 예전을 따라 진행합니다.

 

대상 15: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이제는 제사장들이 직접 법궤를 졌습니다. 편리함을 따르는 대신 희생 제사를 지내면서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웃사가 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법궤가 무엇입니까? 궤 혹 언약궤라고 합니다.

모세가 제작한 직사각형 상자입니다. 높이가 119cm 폭이 70cm 정도 되고 그 안에는 만나가 담긴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09:04).

속죄소라고 부르는 무거운 금판이 덥게 역할하고 금으로 만든 그룹 둘이 날개를 활짝 편 형상으로 얼굴을 마주한 채 속죄소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궤는 지성소에 보관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종노릇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많이 행하였어도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지 않으면 이는 다 허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은 날마다 변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 한때는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즈음에는 한 세대를 6개월 정도로 봅니다. 역사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기도하고, 성경대로 봉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새 수레와 황소를 버려야 합니다. 고집을 포기해야 합니다. 버리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오늘 나만의 수레와 황소인 인간의 방법은 없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는 요소는 과감하게 던져버립시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법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지키는 일을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 길이 복이 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깊은 곳에서 많은 고기를 잡았으며, 주님 말씀에 순종한 하인들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였으며(02:01~09), 선지자의 말에 순종한 나아만은 결국 나병이 깨끗하게 치료됨을 체험했습니다(왕하 05:14).

말씀에 순종하여 놋뱀을 쳐다본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았고(02:19), 양의 피를 칠한 가정은 구원받은 것처럼(12:23) 하나님 법도에 순종함으로 복을 받는 가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베레스 웃사는 법궤를 모시므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다윗 왕은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게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이 법궤 때문에 웃사가 죽은 것과 다윗이 두려워한 것을 알면서도 핑계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오히려 기꺼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 들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이 하나님의 궤 때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궤란 단순한 복이 아니라 만복의 근원임을 잘 알았습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복과 권능을 믿는 믿음의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자기의 복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웃사는 법궤 때문에 죽은 데 비하여 오벧에돔은 법궤를 통하여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벧에돔은 어떤 사람입니까?

13절에서 가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이는 단 지파 지경 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 가드림몬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블레셋의 이방인이 아닙니다.

 

대상 26:05절을 보면 그는 고라 자손입니다. 고라는 모세를 배반하고 원망하여 작당하고 선동하다 하나님의 징계로 죽임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연좌 죄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조상은 잘못하였지만, 당사자가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입니다. 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을 찬양하였고(424445464748장 등) 자기도 찬양하였습니다.

성전 문지기입니다(대상 23:05). 문지기는 당시에 4천 명으로서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벧에돔은 어떻게 하여 복을 받았습니까?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하였습니다. 법궤를 옮기는 것은 국가 대사 아닙니까? 책임자인 웃사가 손으로 하나님의 궤를 잡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무도 두려움으로 법궤를 모시겠다는 사람이 없는 때에 오벧에돔이 나서서 법궤를 매어다가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복과 권능을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원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복을 받지 않으면 누가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궤로 인하여 그와 온 집과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더라고 했습니다.

아비나답 때부터 법궤는 수십 년째 보관되었습니다. 그러나 법궤 운송 과정에서 아들 웃사가 잘못하여 죽음을 맞았고 오벧에돔은 석 달 만에 큰 복을 받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옵니까? 삼하 06:07 절에 의하면 웃사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밝힙니다.

 

삼하 06:0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그러면 오벧에돔의 행위는 잘하였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 주님의 일을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웃사의 방법과 오벧에돔의 방법입니다.

웃사의 방법이란 성경의 원칙은 무시하고 즉 수레를 만들고 수레를 끌 황소를 앞세워 자기 편리한 대로 일하는 자기 고집 주의입니다. 오벧에돔의 방법은 비록 힘에 겨울지라도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일하는 하나님 희생 주의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구약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유대인도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궤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성도들 가정에 3개월씩 돌려가면서 보관하여 복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궤를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성령님의 전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고전 06:19). 우리 속에 있는 인격의 지성소에 법궤를 안치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성령님께서 계시는 성전이 되면 우리도 오벧에돔처럼 모든 일이 잘 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같은 법궤를 놓고 웃사는 저주의 죽음을 맞았고 오벧에돔은 엄청난 복을 받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은 70년이 넘도록 법궤를 모시고 있었음에도 마지막엔 그 아들 웃사가 복이 아닌 화를 입었습니다. 반면 오벧에돔은 불과 3개월 법궤를 모시고도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법궤를 놓고 모두 피하고 꺼릴 때 오벧에돔은 자원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교회 일에 자원하는 신앙인을 찾으십니다. 모두가 피할 때 자원하는 신앙인에게 복을 내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