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어린이주일

2021, 05, 02. 말씀으로 후세교육 합시다(엡 06:04, 잠2:2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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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을 미국 꼬봉이, 한국은 중국 꼬봉이라는 말이 나돕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었기 때문에 듣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일본이 한때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1939.9.1.~19454.8.15). 일본제국주의가 전쟁 말기 힘에 겨운 상황에 놓였을 때입니다.

병력이 모자라자 전문 분야에서 연구하던 대학 교수까지 징집하여 남방 일선에 배치하였습니다. 결과는 총알받이 신입니다. 그런데 소학교 교사는 전혀 징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어린아이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전쟁에 져서 망하여도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 정신을 잘 가르쳐 다시 전쟁을 준비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제국주의 지배가 뼛속 깊이 사무치는 한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만은 전쟁에 투입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가르쳐 미래를 도모하겠다는 계획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육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 전체의 기초를 닦는 아주 중대한 일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초기 어린이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이런 미래형 투자가 한국교회 부흥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대부분 어린이 주일학교가 폐쇄되어 갑니다.

 

매우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대부분 학생이 고등학교 진학할 즈음이면 방향이 정해집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육이 제대로 뒷받침 안 되면 이들의 미래는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상황과 주일학교 교육을 보면 심히 염려되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교회 절기상 어린이 주일입니다. 주일학교 교육을 돌아보는 귀한 주일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만 중요하고 다른 주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일학교에 대해서는 모든 날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말씀으로 후세 교육합시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 새싹을 잘 돌아보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자녀도 하나님 앞에서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0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 본문이 속한 앞부분 01~03절을 잘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문과 연결된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녀를 향해 주님 안에서 부모님의 권위에 순종하라고 명합니다.

이 순종은 십계명 둘째 돌판의 첫 계명입니다(02). 이어서 또(καί)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이렇게 명합니다. 01, 02절에서는 부모라고 기술하였고 04절에서는 아버지만 언급합니다. 이는 아버지가 가정의 대표이며 자녀 교육의 책임에 있어서 제일 크다는 뜻입니다.

 

노엽게(παροργίζω 파로르기조) 하지 말고. 성나게 하다, 격노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부모의 자녀관을 놓고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그 권위를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은 자기의 자녀라도 하나님 앞에서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독립된 인격체란 자녀가 부모님을 통해 태어났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는 뜻입니다.

결국 노엽게 하지 말라는 뜻은 자녀가 가지고 있는 약한 성품을 부모님 쪽에서 잘 배려하여야 함을 말합니다. 내 가정에 있는 아이라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줄 깨달아야지요. 그 인격을 나와 같은 인격체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마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부모님은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때가 덜 묻었음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착한 마음이 부모님 때문에 쉽게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같은 말이라도 부모님은 쉽게 넘어가지만 아이는 충격과 공포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함부로 말을 합니까? 그 어린 마음은 어른이 알 수 없을 만큼 큰 아픔을 겪을 것입니다. 그 상처는 마음에 더욱더 깊이 쌓여 갈 것입니다.

가끔 사회 문제 거리가 된 사이코패스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런데 그 배경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이 어린아이 시절 부모님에 대한 노여움이 쌓이고 쌓여 생긴 성격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녀 교육을 부끄러울 정도로 잘하지 못했는데 지금 좋은 사람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여기십시오. 부모님 된 여러분 자신이 어릴 때 제일 듣기 싫어했던 소리가 무엇입니까? 

옆집 아무개는 저런데 너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는 비아냥일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분명 우리의 자녀도 어른과 꼭 같은 인격체임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인격체입니까?

 

하나님께서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격체입니다. 현실에서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는 지식과 사회 경험과 생존의 능력 등 모든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권위에 있어서는 부모님 마음대로 일방통행입니다. 이런 일방통행 가운데서 나타나는 부모님 권위가 남용되는 일은 없는가 돌아보십시오. 

성도 여러분 가정에 자녀가 얼마나 있습니까? 아무리 많아도 자녀는 부모님의 소원이나 요구를 충족시키는 대리 만족의 대상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그 개인의 인격을 각각 예정하시고 조성하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음을 안내합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이런 성경 원리로 보아야 합니다.

 

 

 2.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십시오.

 

0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부모님은 단순히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으로 책임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훈(παιδεία 파이데이아)은 훈련이나 체벌을 동반한 책망을 의미하며 훈계(νουθεσία 누데시아)는 말로 하는 교훈이나 교정(矯正)을 의미합니다.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이런 교양과 훈계를 통해 신앙인의 행동 양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가 주님 안에서 성숙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 교육을 성경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양육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부모님의 양육을 학교 교육까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교육을 말합니다. 자녀 양육의 기본 원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자녀를 나의 틀에 맞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자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두었으면 부모님은 반드시 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내 가정에 있는 자녀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잠시 양육권을 주셨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내 자식이라는 소유의식으로 여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식은 부모의 대리 만족을 위한 한 풀이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아들아 딸아, 내 뜻을 이루어다오. 돈이 최고다. 돈을 마음껏 벌어라. 말로서는 주여, 주여, 하고 외쳐대지만, 학교에서 일 등 해라. 세상에서 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식의 기도로 세상 과녁을 조준하지 마십시오.

 

어느 믿음 좋은 여집사가 금식기도를 하다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이 돌들로 떡 덩이를 만들어 보라는 시험입니다. 그러자 이 여집사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사탄이 물러가라. 하며 잘 이겨내었습니다. 

이번에는 마귀가 너, 나한테 딱 한 번만 절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네가 원하는 금은보화 모든 명예 권세를 주겠다며 시험합니다. 

믿음 좋은 여집사는 이번에도 사탄이 물러가라 하며 이겨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탄이 이렇게 시험합니다. 그럼, 나한테 딱 한 번만 절하면 재수하는 네 아들을 일류대학교에 합격시켜 주겠다. 그러자 믿음 좋은 여집사가 그 말을 듣고 즉시 사탄에게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합니다.

 

양육하라(ἐκτρέφω 엑트레포). 문자 자체로 보면 젖을 먹여 키운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잘 자라나도록 키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혹 자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일 등을 한다고 삶이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자신을 꾸며라. 영혼 구원하는 일에 힘쓰라. 공부 잘하는 목적이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교육을 보면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습니다. 지능을 높이려는 IQ(Intelligence Quotient) 교육과 감성이나 인성을 높이려는 EQ(Emotional Quotient) 교육입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인성 기초를 잘 세워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자 정신의 인성 교육이 우선입니다.

세상 목적을 위해 너무 무리하지 맙시다. 성적 위주의 욕심을 부리면 혹 자녀의 인성이 망가져서 정서의 불균형을 이루기 쉽습니다. 성적은 올랐는데 아이는 불행하다는 말입니다.

 

 

 3. 자녀를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양육하십시오.

 

잠 22:0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본 절의 핵심을 찾기 위해 먼저 살펴볼 단어가 있습니다. 가르치라 입니다. 문자의 의미는 훈련을 시킨다는 말로서 일생을 바친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경건한 가정의 자녀 교육은 하나님께 일생을 바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마땅히 행할 길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하십시오.

 

부모님이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 두고 자녀를 교육하면 분명히 돈돈하면서 물질의 길로 갈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거울이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으로부터 강한 영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을 위해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 문화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십시오. 어떤 환경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을 심는 훈련을 하십시오.

 

우리 모두 어떤 부모님이 되어야 합니까? 솔로몬은 21세에 왕이 되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한 경험을 글로써 남겼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남긴 글이고 잠언은 특별히 자녀에게 남긴 글입니다. 

잠언의 특징을 잘 보십시오. 01장부터 매장마다 내 아들아 훈계를 받으라,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녀 교육은 말씀 교육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한번 말하면 순종하는 자녀가 되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훈계로 양육하여 아름다운 기업이 되게 하십시오. 교회가 세상 방법에 얽매이면 자녀는 세상 길로 가기 쉽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교육은 교회 교육이 최고입니다.

 

유대인의 교육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말씀을 통한 성경 교육과 ②훈계와 채찍 교육과(세계에서 매를 제일 많이 때리는 부모가 유대인) ③회당 교육입니다. 이 세 가지 교육을 철저히 행하였습니다. 결과는 오랜 세월 국가 없는 민족으로 지내면서도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노벨상이 제정된 이래 단일 민족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이들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배우고 생활에서 교회의 예법을 익힙니다.

신명기 6장의 쉐마(שָׁמַע)가 이스라엘 교육 헌장의 기본입니다. 세상 교육은 우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에는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교육은 우선 갈등하고 실패하는 것 같지만 마침내 승리합니다.

 

딤후 0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어릴 때부터 말씀 훈련은 시대가 변하고 사회 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위치에 서는 것은 한 생명의 인생을 좌우하는 사명자의 위치입니다. 자녀의 성장 과정과 전 인생이 오직 부모님의 교육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위치가 중요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 자녀를 키우는 일에 대해 더욱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십시오.

 

우리나라 속담에 될 만한 나무는 떡잎부터 보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의미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릴 때 지정의가 제대로 형성되면 그 인생은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은 어릴 때부터입니다. 크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낙관은 실패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입학시험을 치를 입시생이 전날 식사를 하다 그만 물컵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 하는 말이 물컵이 떨어졌네. 하자 그만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해는 입시 전날에 조심스럽게 물컵을 다루는데 그만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접시가 땅에 붙었네. 해서 결국 입시에 붙었다는 아재 개그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일을 향한 도전의 말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감사가 넘치는 말을 하면 자녀도 감사를 알게 되고 사랑스러운 말을 하면 자녀도 사랑스러워집니다. 자녀가 바르게 자라길 원합니까? 믿음의 말을 해 주십시오. 세상에서 부모님의 위치에 서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 교육열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열심만 있다고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따라 바로 양육하여야 성공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바른 교육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따라 양육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십시오. 무조건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열만 가지고 달려들지 마십시오. 자칫 사회 부조리의 단골 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자녀를 보면 너무 사랑스럽지요? 천사 같지요? 그 자녀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죄성이 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부모님은 자신이 자녀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만큼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이 사실 망각하지 마십시오. 자녀는 부모님의 대리 만족을 채워주는 자가 아님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자녀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처럼 착각할 때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은 부모가 조심해야 할 주의 사항을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가 자녀 교육에서 성공하는 부모님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