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가장 먼저 찾아와서 가장 늦게 떠나는 죄 하나가 있습니다. 교만이라고 하는 죄입니다. 잠언 06:16~19절에 하나님이 특별히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죄의 목록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죄가 교만입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고 실감 나는 표현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사람에 따라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한 마디로 잘 난 체하면서 뽐내는 건방짐입니다.
죄의 기원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기원을 찾는 것은 난해한 일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간접 말씀 유 01:06 절을 볼 때 천사의 타락에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던 천사장 루시퍼가 교만에 빠져 자기의 지위와 처소를 떠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교만 때문에 타락이 왔고 죄가 왔습니다. 천사의 타락과 죄의 유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완벽한 이론 체계를 따지면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또한 천사장 루시퍼에 대하여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사탄의 존재가 되었다고 간접으로 밝힙니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 도다.
교만이 찾아오면 사람의 인격이 무너집니다. 인격이 추해집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일에 걸림돌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교만의 죄가 제일 무섭습니다.」로 정했습니다. 말씀을 들으시면서 자신의 교만한 모습을 교정하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은 먼저 교만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
11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이사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야 하며, 인간이 추구하는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성경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에서 주전 8세기 중반부터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네 왕이 통치하던 약 60여 년을 활동한 인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중동지역의 강력한 패권 국가는 앗수르입니다. 이 앗수르는 주전 745년경 디글랏 빌레셀 [Tiglath-pileser III]이 권좌에 오른 후 장악한 후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주변 여러 약소국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습니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도 생존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환경 같으니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의 전략으로 현실 국면을 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 것을 제시합니다. 혹 여러분은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대에 같이 사역한 선지자 이름을 아십니까? 미가 선지자입니다.
이 두 선지자가 같이 일한 흔적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 사 02:01~03절과 미가 04:01~03절을 보면 그 내용이 일치합니다. 같은 주제로 사역하였는데 그 주제가 마지막 때에 관한 일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때 특별히 끝날에 라고 하였고 이사야도 말일에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같은 시대에 사역하면서 같이 마지막 날에 될 일에 관한 같은 내용을 받았기 때문에 용어도 같이 사용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날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날이란 구약 시대의 심판의 날이기도 하며 멀리는 신약 시대의 마지막 날 심판의 날이기도 합니다.
신약 시대는 말세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하였고(벧전 04:07),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이것이 마지막 때라 하였습니다(요일 02:18).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눈이 높다는(גַּבהוּת עַיִן 아인 가브후트) 말은 마음의 내적 교만이 나타나는 외형의 형태입니다(시 101:05, Calvin). 눈이 높은 자를 적절하게 형용하는 표현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표현이 12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교만한(גְּאֶה 게에) 자, 거만한(רוּם 룸) 자, 자고한(נָסָה 나사) 자입니다. 이 세 형용사는 동의어로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진 모든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Lange).
이스라엘에는 이미 심판의 불이 임하였는데도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돌아갈 생각을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니 어떤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 믿으며 죄의 길로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희망이 있는 기대입니까?
습 01: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2. 교만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서두에서 제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잠 06:16~19). 그 가운데 첫째 죄가 교만입니다. 교만의 속성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한 마디로 더욱 높은 존재와 같이 되려는 불신 마음가짐입니다.
교만의 출발점이 어디입니까? 자기 분수를 넘어 하나님께 반역의 기를 든 사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엄중히 다루시는 교만이 어느 부분에 있습니까? 마음입니다. 사탄이 교만을 마음에 심어주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교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포장만 잘하면 사람이 알아차리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여러 계시와 은사를 받았다고까지 고백하였습니다(고후 12:07). 하나님은 바울이 이런 신령한 은사들로 인해 교만해질 수 있음을 아시고 사탄의 가시를 심어주셨습니다.
그 가시의 질병이 무엇인지 성경은 정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성경학자에 따라 안질이라고 하고 혹은 간질이라고도 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육체의 질병을 놓고 괴로워하다 하나님께 간절히 세 번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고후 12:0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육신은 힘들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가시로 인해 겸손해질 수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은 큰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였음에도 그 능력을 자신이 탁월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성도가 교회를 봉사하면서 받은 달란트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복입니다. 그 복을 잘 감당하면 하늘나라에 큰 상급으로 쌓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가운데 더러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은사를 사람 앞에 내세우다 그만 교만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교만은 사탄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바울이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교만을 잘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육신의 고통이나 현실의 고난이 때로는 교만을 치료하는 처방전 역할도 됩니다.
교만이 찾아오는 통로가 마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어지게 하고 자신만 의지하게 하는 불신앙의 병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마음이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잠 06:05). 또 마음이 교만한 자는 패망의 선봉장 역할도 합니다.
눅 18:10~14절을 보면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로서 바리새인은 당시에 율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대표 종교인이고, 세리는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 격인 죄인입니다. 이들은 하나가 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을 보니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마음이 교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3. 교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
약 04:0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무서운 장애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차단하며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하는 죄입니다. 약 04:06 절을 잘 보십시오. 교만한 자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적당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즉각 물리치십니다.
물리치시고(ἀντιτάσσομαι). 물리친다는 말은 전투 용어입니다. 이 전투 용어를 야고보가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으로 보신다는 강력한 의미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보십시오. 정권 초기만 하더라도 총명과 통치력과 지혜가 넘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교만이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 교만으로 인해 나라의 실제 일인자인 사무엘 선지자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함부로 지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교만해진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으며(삼상 15:35), 사울을 더는 왕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삼상 16:01). 결국, 불행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유다 왕국의 10대 왕 웃시야를 보십시오. 16세에 왕이 되어 52년을 다스린 막강한 왕입니다. 그 역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지내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이 일을 보고받은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왕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이렇게 만류합니다.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닙니다. 구별함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만이 해야 합니다. 왕은 성소에서 속히 나가소서 이미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제사장에게 막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면 웃시야가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왕의 권세로 드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순간 나병이 발병하여 별궁으로 쫓겨났습니다. 다 교만의 결과입니다.
대하 26: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었고 나병 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한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마귀가 우리를 흔듭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는 복종하고 마귀는 대적하라고 전합니다(약 04:07).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은 한시라도 빨리 행동으로 옮기라는 촉구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교만하지 않다. 교만의 죄는 나하고 별 연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교만에 빠져있는 줄 아십시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의 교만을 드러내시고 내 삶의 어느 영역에서 교만한지 그것을 알려주십시오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다고 여기는 겸손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교만의 죄가 있는지 돌아봅시다. 목회자는 교인보다 더 신앙으로 산다고 여기면 그 착각 죄를 회개해야 하고, 성도는 목회가 저러면 안 돼 라고 말했다면 이 역시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Tagaster)에서 기독교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어거스틴(St. Augustinus 354~430)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훗날 성자로 불렸는데 하루는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어거스틴은 첫째는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이 다시 질문하기를,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하니 교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교만은 무엇일까요 하고 물으니 교만이란 자기가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잠 21:0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에 비추어 우리가 교만한 자입니까? 겸손한 자입니까? 이제부터 교만의 죄가 내 마음에 자리 잡지 않도록 자신을 잘 돌아봅시다. 혹 지금까지 즐겼던 교만의 병이 있다면 오늘 예배를 통하여 치료받기를 축원합니다.
렘 13: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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