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국 아버지로 불리는 Benjamin Franklin(1706.1.17.~1790.4.17.), 미국 100달러 지폐에 새겨져 있는 이분 이름 벤저민 프랭클린 명언 모음이란 제목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그가 남긴 좋은 글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분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받은 상처는 모래 위에 세우십시오. 그러나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세우십시오. 그러면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메시지를 우리는 잘 암송합니다(살전 05:18). 예수님을 믿는 날부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의 생활을 앞세우며 살아야 함에도 마음에 불평과 원망을 품고 괴로워하며 지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김삼일 가족 모두가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지금까지 쌓인 모든 불평의 찌꺼기까지 지워버리는 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기독교인이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는 주일입니다.
김삼일 가족에게는 혹 마음에 불평이나 원망이 담겨 있습니까? 다 지워 버립시다. 그리고 감사의 DNA를 회복합시다.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감사할 일이 현실에서 분명히 따를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어떤 상황을 만나도 감사합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다윗은 죽음의 환경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
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다윗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사무엘하와 역대상을 보면 다윗이 아파 죽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건강 이상설이 전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이 죽음의 골짜기와 같은 육신의 병을 만났다는 흔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01) 사울 왕의 삼천 명 특공대 손길을 피하여 다닐 10년 사이에 만난 병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골리앗을 무너뜨린 맹장 아닙니까? 이 다윗이 병을 만났는데 그 병명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 병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으로 보아 단순한 질병이 아닙니다. 의술로는 전혀 고치기 힘든 병입니다. 09절에도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 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이 그만큼 죽음의 문턱에서 고생하였다는 뜻입니다.
내 영혼을 스올(שְׁאוֹל)에서 끌어내었다는 말은 죽음의 문턱을 오고 간 고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경을 헤맨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 병을 사람은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여 풀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02절 나를 고치셨나이다. 03절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라고 고백하는 부분을 보십시오. 다윗을 죽음까지 이끌어 갔던 병이 이미 과거형입니다.
02절과 03절을 보시면 한때는 죽음과 같았지만, 이제는 해결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제일 감사를 많이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늘 감사하며 산 것은 아닙니다.
왕이 되어 40년 통치를 하는 동안 서서히 감사의 인물로 성숙하여졌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다윗도 처음에는 다른 이들처럼 환경 따라 휘둘리고, 그의 마음에 불평이 일기도 했고 원망도 했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좌절하였고 형통할 때는 무척 교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중심 하나를 앞세워 점점 감사하는 신앙인으로 다듬어져 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고난도 유익이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다윗은 깊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점점 감사의 사람으로 성숙해 갔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으로 황무지를 다닐 때 처절하게 고백한 말을 아십니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는 표현입니다(시 40:02).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특공대를 조직하여 추격할 때 죽음의 병을 만났습니다. 계속 주변 사람이 신고하니 틈도 없이 쫓겨 다녔습니다. 이런 환경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 아닙니까?
이스라엘의 남북조 시대 유다 왕국의 13대 왕 히스기야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지요? 안타깝게도 29세에 그만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인 만큼 죽기 싫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생명을 15년 더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 행적이 이사야 38장입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기도는 육체의 병과 상한 심령을 고치는 약입니다. 기도는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길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다가오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시 34:18).
2. 하나님은 다윗의 슬픔을 춤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다윗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깊은 신앙의 즐거움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더욱 깊게 알아갔습니다. 건강한 성도는 고난을 겪을 때는 아프고 힘들지만 믿음으로 극복하면 그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을 통해서 찾아옴을 깨달음이 복입니다.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삼상 18:06), 또는 축제 때(출 32:19; 삿 21:21)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추는 것은 극도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사기를 위하여 태연한 척하였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낱낱이 고하였습니다. 건강 문제도 기도로 풀어나갔습니다. 건강이 예전처럼 회복되었습니다.
마침내 춤을 추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춤을 춘다는 것은 극도의 기쁨으로서 하나님이 문제를 풀어주셨음을 입술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신앙 고백입니다.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베옷은 구약 시대 회개할 때나 처절한 슬픔을 당하였을 때 애통한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입는 옷입니다(욘 03:05~08). 그런데 다윗이 잠시지만 베옷을 입은 처지와 같았습니다.
그의 대적들 때문에, 그의 질병 때문에, 사울 왕의 특공대 추격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기도로 풀어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고 감사하여서 나의 베옷을 벗겨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고백이 05절에도 나옵니다.
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다윗처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합시다. 눈물이 멈추고 한숨이 사라지게 합시다. 춤을 추는 자리까지 갑시다. 믿음으로 도전하면 얼마든지 춤을 추고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로부터 구원을 받았을 때 미리암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추니 모든 여자가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출 15:20).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 슬픔이 변하여 춤을 추며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31:13). 다윗도 훗날 왕이 되어 바알레유다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올 때 기뻐서 춤을 춘 적이 있습니다(삼하 06:01~14).
우리의 인생살이에 때로는 하나님의 연단 채찍이 아픔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그 아픔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은혜로 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캄캄한 밤과 같이 여겨집니까? 주님은 우리 곁에서 찬란한 아침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춤을 추는 기쁨을 분명히 준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춤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신음할 때에 주님은 다가와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고난 속으로 오셔서 슬픔을 즐거움으로, 절망을 춤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고난의 파도가 밀려오는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다윗은 하나님께 영원한 감사를 다짐합니다. |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오늘 본문 시편 30편은 12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12절 속에 여호와, 주,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무려 25회나 나옵니다. 다윗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아주 친근한 코람데오의 삶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드렸습니다. 또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후에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이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12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다윗이 어떤 고백을 합니까?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의 생활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서원의 성격으로 격상시킵니다. 지금까지의 감사 생활보다 앞으로의 감사 생활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임을 아십니까?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의 베옷을 벗겨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며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의미와 감사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를 알았습니다.
인생 마지막을 정리하는 순간에 하나님과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 이보다 성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의 표현입니다. 04절을 잘 보십시오.
다윗은 혼자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자고 외칩니다. 그래서 주의 성도들아. 라는 불특정 다수의 호칭을 사용합니다. 다윗은 혼자만 잘 믿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함께 찬양하고 감사의 생활을 하자고 외칩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우리가 평소에 몸과 마음과 물질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가를 점검하는 주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상태, 나의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감사지수가 높을수록 믿음이 건강한 사람이고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믿음이 건강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위의 성도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는지를 눈여겨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믿음이 감사의 생활로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서양속담에 행복의 여신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에 행복의 천사가 찾아올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은 슬픔과 고통을 만났을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눈보라 치는 겨울바람과 같습니다. 모든 생활이 불평 거리만 만들어낼 뿐입니다. 모든 것이 모자람의 생활입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한 사람은 무인도에 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감사할 조건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골 0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중국 푸젠성(福建省) 룽치(龍溪)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소설가와 문명비평가의 삶을 산 린위탕(林語堂, 1895.10.10.~1976.3.26.)의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중국 민족의 정신세계를 철학의 수준으로 표현한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완전한 것은 없다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중국인들의 寓話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남자가 죽어서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지옥 사자의 실수로 죽지 않을 사람이 죽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마침 지옥 책임자가 그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말합니다.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싫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시면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지옥 책임자가 물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이냐? 그 남자가 말합니다. 제가 다시 살아 돌아간다면 장관 아들이나 장원급제한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 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넓은 땅과 연못, 온갖 과일이 열리는 과수원,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 어여쁜 첩들이 있어야 합니다.
또 온갖 보물과 곡물이 가득한 창고를 주시고 나중에는 황제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백 살까지 살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지옥 책임자가 웃으며 말합니다. 야, 이 친구야, 세상에 그런 부귀영화가 있다면 내가 환생하지 어찌 너에게 그런 복을 준다는 말이냐?
이 우화가 포함된 글의 제목을 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완전한 것은 없다.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보실 때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완전한 것 온전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까? 없습니다. 다 모자란 가운데 살아갑니다.
질문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있으며 흠이 없는 자녀가 있습니까? 완벽한 남편이 있고 완벽한 아내가 있습니까? 세상에는 완벽하고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마다 완벽을 꿈꾸고 소망하면서 그것을 향하여 나아갈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드릴 말씀은 감사하는 곳에 넘치는 복이 있습니다. 미국의 의사 John Jaweet은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의 핏속에는 예방제, 해독제, 방부제라는 세 가지 요소가 생긴다고 합니다. 감사의 생활로 건강의 복과 함께 삶의 질이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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