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사도신경

[사도신경 ①] 사도신경을 배워야 합니다(갈 01:06~0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 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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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앙 출발을 한 성도는 평생 잊어서는 안 될 3가지의 신앙 표준이 있습니다. 주기도문(06:09~13)과 십계명(20:01~17)과 사도신경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도신경을 우리는 공적예배에서 자동화 시스템처럼 고백합니다.

그러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영적 의미를 잘 깨닫고 고백합니까? 사도신경을 참 된 믿음으로 고백하느냐의 여부가 기독교인의 진위를 확인하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믿음의 골격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 성경을 가집니다. 그런데 성경의 66권을 배워서 익히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새가족에게는 어쩌면 까마득한 세월일지 모릅니다. 반면 66권을 종합하여 요약한 사도신경(使徒信經)은 배우기도 쉽고, 우리 믿음의 욕구도 채워주며, 동시에 교리의 진위를 구별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은 성경의 요점만을 간추린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새가족에게는 확고한 신앙을 확립시키고 기존 신자에게는 믿음의 길라잡이 역할을 합니다.

 

오늘부터 차례차례 강론할 사도신경은 넓게 보면 성경 전체의 내용을 함축한 신앙고백입니다. 압축해서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교회의 사명과 구원과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사도신경의 의미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어떤 고난의 현장을 만날지라도 진실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 마디 한 마디가 성경의 진리를 압축해 놓은 사도신경은 우리에게는 신앙의 나침반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신자입니다. 때문에 성경의 중심 교리를 뽑아 놓은 사도신경을 진리의 신조(信條)로 확신하고 힘과 마음을 다하여 진리탐구에 힘쓰기를 축원합니다.

 

 

  1. 사도신경의 출발점을 보겠습니다.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도신경은 사도(使徒)와 신경(信經)이란 말로 나누어집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의미하고, 신경은 믿음을 정리해서 기록한 문서입니다. 신경이란 신조와 같은 의미로서 우리가 믿는 신앙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사도신경이란 사도들의 신조라고 합니다.

사도신경을 문자로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믿음을 정리해서 기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도들은 신경을 만드는데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믿음에 기초하여 후대의 신자들이 정리한 것으로 사도들이 믿고 고백하였던 그 고백에 근거를 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대화를 즐거워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셨고 질문을 받기도 하셨는데 그렇다고 질문을 다 좋아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예수님께 질문하여 올무에 걸려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런 사람의 질문에는 우회적으로 혹 침묵으로 대응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물음을 좋아하셨습니다왜냐하면 그것은 더 깊이, 더 넓게 날기 위한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면서도 신령한 갈망을 하는 자들에게는 질문을 하여 그 답변으로 하여금 신앙고백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 안드레와 요한이 찾아 왔을 때는 무엇을 구하느냐(01:38)고 물으셨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04:04) 하셨습니다또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 한사람만 주님께 와서 감사를 드릴 때는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17)고 물으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시 세상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여론이 어떠한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여론을 종합하여 이렇게 보고합니다.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로 부릅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 가까이서 생활하는 제자들의 신앙 생태가 궁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열정이 넘치는 베드로가 즉각 나서 고백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도신경의 근원이 여기입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어떤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어떤 기독교 공의회에서 의도적으로 제정한 것도 아닙니다. 어느 때 어떤 사람들이 썼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만 역사를 살펴 볼 때 주후 5세기경에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사도신경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을 보겠습니다.

 

01:0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신앙과 행위의 규범이요 표준인 사도신경이 성경에 본문 형태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개혁교는 사도신경을 복음의 요약으로 받아들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각 처에 이단들이 생겨났는데 단순히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만으로 이들과의 구분이 잘 안 되었습니다. 당연히 교리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이 필요했습니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설이 있어 왔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 설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도설(使徒設).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10일 후 성령님의 감동에 의하여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각자 한마디씩 고백한 것을 모아서 12개의 고백으로 만들었다는 설.

초대교회설(初代敎會設).

경건한 초대교회 신자들이 믿고 전한 바를 성경을 토대로 하여 제정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 일반 신자의 신앙생활을 지도할 수 있는 지침서를 베드로가 로마에 가지고 갔다는 것에서 사도신경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

루피누스설(Ruffinus).

주후 390년 로마 교황 시리키우스(Siricius)가 밀라노 종교회의 때 작성한 한 문서가 로마로 보내는 편지 속에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었다는 설.

 

그러나 사도신경이 단번에 오늘날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도신경이 체계화되고 정착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대별로 나타나는 이단들을 구분하고 물리치는 교리를 확립해야 했기 때문입니다그리하여 주 후 2세기부터 사도신경의 골격을 이루는 복음의 요약, 신앙규칙 등을 체계화하고 보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사도신경과 거의 같은 형태의 신경이 채택되기까지는 몇 백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적어도 사도신경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4번의 중요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 회의가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니케아 공의회(Councils of Nicaea)입니다. 여기에서 사도신경이 거의 갖추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사도신경을 니케아신경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중요한 회의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431년의 에베소 회의, 451년의 칼케돈 회의입니다. 이런 회의들을 통해서 사도신경을 여러 차례 수정하고 보완하는 동안 이단과의 많은 논쟁도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논쟁이 기독교 역사가 전하는 아리우스 논쟁입니다.

 

아리우스(Arius, 250년 추정~336년 추정)는 예수님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아버지와 같은 관계이지만 본질은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여기에 반박을 하며 정면으로 나선 사람이 아타나시우스(Saint Athanasius 알렉산드리아 293~373,5,2)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삼위일체 체계를 세운 사람으로서 아리우스의 이단 사상에 대한 변증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들은 이런 이단뿐만 아니라 모든 육체와 물질세계를 죄악시하며 영의 구원만을 강조하는 영지주의로부터도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를 흔드는 이단으로부터 정통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서 체계적인 사도신경이 필요했습니다. 믿음생활은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딤후 0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3. 사도신경을 제정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0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세례 문답서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신약교회가 생긴 주 후 33년부터 100년경까지는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과 다른 목격자들이 존재하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떠나고 사도들의 제자인 속사도와 교부들이 사역하면서부터 사도 시대와 같은 권위가 더 이상 발휘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례를 베풀려니 당연히 간단한 문답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100~125년경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앙의 규율이 나왔는데 요즘의 교리문답서 정도입니다.

 

사실 복음의 초창기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례자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믿음의 세계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무조건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세례를 받기 전에 복음을 확실히 이해하였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만들었습니다.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직접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이것이 바로 2세기경에 사용한 고백형 로마신조(信條)입니다.

이후부터 사도신경의 전신인 로마신조는 세례식 때 신앙고백의 표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로마신조의 내용은 문답형으로 되어 있어서 3가지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면 되는 문서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장사되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몸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단으로부터 진리를 사수하기 위함입니다. 사도신경이 제정되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시대에도 이단들이 도전하였는데 사도들이 떠났으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교회에 침투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정확한 교리와 신앙 교육의 지침서들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신자가 강력한 이단에 의해 흔들리거나 실족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교회들마다 비상이 걸렸습니다.

 

교회를 지키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바른 신앙고백문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그러나 복음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신앙고백서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앙고백서를 만드는 그들 속에도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형으로는 구분 할 수가 없어서 문서를 만드는 과정에도 이들과 자주 충돌이 났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많은 이단 가운데 특별한 이단 두 가지가 혼란을 부추기며 믿음의 세계를 파괴시켜 나갔습니다. 당시의 대표 이단은 가현설과 거기서 더 진화 된 영지주의입니다.

 

가현설(假現設 Docetism). 2세기 경 흔히 볼 수 있던 사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양처럼 보였다는 가상(假像)설입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선하심으로 악의 육체를 스스로 취할 수 없고, 죽음도 있을 수 없다는 설입니다. 이런 두 가지를 전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영이기 때문에 결국 육체의 외관을 잠시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입니다.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가현설이 세월이 흐르면서 영지주의라는 강력한 이단으로 진화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2세기 경 홍수와 같이 교회로 밀려 들어왔고 3세기 초에는 로마 제국 내의 모든 교회가 이 사상으로 말미암아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 영지주의는 혼합주의 이원론으로서 영혼과 육체를 엄격히 구별합니다. 그들은 육체는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육체로는 오실 수 없다는 사상입니다.

영지주의를 의미하는 영어의 Gnosticism은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에서 왔는데 그 구원의 교리는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 받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구원을 얻기 위해서 특별한 비법 또는 비밀한 지식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3가지 계층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영의 계급. 영적인 성품을 지닌 자들에 의해서만 그노시스는 독점되어지며 그들만이 최고신의 빛의 권계(圈界)로 복귀되어지는 구원을 맛볼 수 있다.

정신의 계급. 신앙 이상의 지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과 실천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기는 하지만 저급한 복을 받게 된다.

물질의 계급. 단순히 물질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전적으로 소망이 없는 상태에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끊임없이 욕망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결국 완전한 멸망에 이른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 내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서 책망하였는데 바로 이런 사상을 주장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요일 04:02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0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M 루터(Martin Luther 1483,11,10~1546,2,18). 사도신경은 초대의 교부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꿀벌들이 온갖 아름다운 꽃들로부터 꿀을 모아 내듯이 위대한 선지 사도들이 전해 준 성경의 가르침을 오묘하게 요약한 것이다. 어린이들과 순수한 신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어떤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어떤 공의회에서 의도적으로 제정한 것도 아닙니다. 어느 때 어떤 사람들이 썼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만 역사를 살펴 볼 때 5세기경에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는 사도신경을 교회의 신조로 굳게 지킵니다. 이단을 구분하고 정죄할 때의 기준이 바로 이 사도신경입니다한국교회 안에는 사도신경을 폐기하여 사용 안하는 교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들 교회가 다 이단수준으로 전락되었다고 봐도 됩니다. 제가 세례를 받기 위하여 문답하러 오신 분에게 꼭 사도신경을 묻습니다. 사도신경의 뜻을 잘 새기고 믿음의 나침반으로 삼으면 절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