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열두 사사

[제12대 사사 삼손] ②삼손은 결혼에 실패하였습니다(삿 14:01~2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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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따라 거룩한 신분 나실인(נְזִ֧יר)으로 태어났습니다. 나실인에 대해서는 삼손은 나실인 복을 받았습니다. 편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머리카락이나 기타 털을 깎지 않고 경건 생활해야 하는 신분입니다.

자기를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림은 자기 몸을 공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한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한 헌신을 하는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힘을 받았습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힘, 놀라운 힘, 바로 괴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주신 놀라운 힘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오랫동안 괴롭히는 원수의 나라 블레셋을 물리치는 데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나실인답지 않은 결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조릅니다. 삼손의 부모도 어떻게 이스라엘 동족이 아닌 블레셋 사람과 결혼하려느냐고 만류합니다. 아무리 말려도 자식이 꼭 이 여자와 하겠다는데 어디 부모가 이길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어서 허락하는데 이 결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삼손은 결혼에 실패하였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은 나실인이 믿음의 길을 이탈하면 허용하십니다.

 

0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01절을 보면 삼손이 딤나에 내려갔다고 나옵니다. 이 딤나는 여호수아가 삼손이 소속한 단 지파에 할당해 준 기업입니다( 19:34).

그러나 단 지파가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지 못함으로 계속 아모리 족속의 영역에 머물렀지만, 해양 민족 블레셋이 들어오면서 그들의 지배에 들어갔습니다.

삼손의 고향은 소라입니다(13:02). 이 소라에서 담나 까지는 5km 정도 됩니다. 이곳에 삼손이 놀러 갔다가 마음에 드는 결혼 상대자를 만났습니다.

 

이에 삼손이 집으로 와서 부모님과 의논합니다. 말이 의논이지 마음에 드는 처녀를 아내로 삼겠다는 통보입니다. 허락해 달라는 생떼입니다.

이에 부모님은 삼손에게 이스라엘에 얼마든지 처녀가 있는데 하필이면 할례받지 않은 민족의 딸과 결혼하려느냐며 강하게 반대합니다.

여러분 어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습니까? 삼손이 부모님께 결혼 문제를 상의하는 것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나실인다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믿음 차원에서 보면 나실인다운 행동이 아닙니다. 이렇게 의논하는 것은 신부를 데려오기 위한 결혼 지참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남자는 여자를 데려오기 위해 여자의 부모님에게 반드시 결혼 지참금을 주어야 합니다. 이 지참금 일로 삼손은 아버지에게 의논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당시의 생활상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삼손 이전까지 이스라엘에는 11명의 사사가 지나갔습니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입니다.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외세의 침략으로 극심한 고난에 처해 있었습니다.

시대마다 사사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침략자를 물리쳤습니다. 지금 제12대 사사 삼손이 등장하는 환경을 보면 침략자로 인한 긴장감이 보이지 않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가문에서 신붓감을 만날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환경이 되었습니까? 이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후 펼친 화친 정책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로부터 조공만 받고 사람과의 왕래를 허락하면서 펼친 블레셋의 화친 정책으로 이스라엘이 못 견딜 정도의 고난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화친 정책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서 서서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제12대 사사 삼손이 등장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한번 신중히 생각해 봅시다. 삼손이 나실인의 법도를 완전히 깨뜨리면서까지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04절을 보면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기 위해서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프로그램처럼 보입니까?

액면대로만 보면 하나님의 뜻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의 가치를 놓고 볼 때 과연 이 결혼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04절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성경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법은 삼손이 추진하는 이런 결혼을 엄격히 금합니다( 34:15, 16;  07:03, 04). 과거 이스라엘의 선조들 역시 동족끼리의 결혼을 바람직하게 여겼고, 또 그렇게 시행해 왔습니다( 24:03, 26:34, 36:06).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삼손이 나기 전 천사에게 물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에 대한 법도입니다(13:08, 12). 그러자 천사는 경건 생활하라고 명합니다.

 

 13: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삼손은 자기 생각을 따라 딤나에서 블레셋 족속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 일은 나실인으로서 삼손의 믿음 이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손이 이탈하여 간 그 길도 사용하셔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펼치십니다.

삼손이 나실인의 품격을 지키면서 사역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다른 길을 보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요 하나님의 허용 섭리입니다.

 

 

2. 나실인의 법도를 이탈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0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03절을 잘 봅시다.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이 부분을 의역하면 그 여자도 나를 좋아하므로 이런 뜻입니다.

이로 보아 삼손은 상대의 신앙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육신의 안목을 충족시켜 줄 여자의 외모에 푹 빠져 결혼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04절을 봅시다. 삼손이 이런 불신앙 행동을 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개입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깁니다.

삼손이 불신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고 블레셋과 화친한 것처럼 위장해서 그들을 칠 기회를 엿보는 전략이 하나님의 뜻처럼 보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입니까?

 

이럴 때는 성경의 기본 원리를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리 목적이 그럴듯하게 보여도 그 수단이 불건전하면 합당한 일이라 하지 않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굳이 이방 여자와 합당하지 못한 결혼을 하면서까지 일을 도모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도 목적에 관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방법을 통해서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생각들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안내합니다.

 

 06:0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0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진행함에는 수단과 방법도 합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시되 행동이나, 생각이나, 말까지도 다 감찰하십니다. 신앙인이 행하는 일의 그 모든 과정에 불의가 없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목적 자체보다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04절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처럼 보이는 부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04절은 앞에서 전개된 결혼 이야기의 연속이 아니라 저자의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이런 불신 결혼을 절대 지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삼손 자신이 이 길을 원하기 때문에 허용하신 것뿐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해서 화친한 것처럼 위장하는 속임수는 자기 뜻입니다. 블레셋을 치고자 하는 계획이 삼손 자신의 계획과 의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하와)이 선악과를 따 먹을 때나 애굽의 바로 왕이 강퍅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말리지 않고 그대로 두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 의지를 통해서 결정하면 그 결과 또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제 삼손의 사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을 이탈한 삼손은 완전히 버리셨습니까? 06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버리지 않고 사용하시는 중입니다. 이 또한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합심하여 하나님께 매달리는 회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의지로 계속 밀고 나가면 그 마지막은 불행의 열매를 맺습니다( 16:21, 30).

 

 

3. 나실인을 이탈한 결혼은 결국 실패합니다.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은 딤나에서 유대식 결혼이 아닌 블레셋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삼손의 처가는 딤나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결혼식을 보면 신랑의 들러리 역할을 할 친구들이 한 사람도 안 보입니다.

처가 쪽에서 삼손이 많은 친구를 데려오면 블레셋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여 미리 데려오지 말라고 조처를 한 것 같습니다. 대신 처가 쪽에서 삼손이 외롭지 않도록 배려하여 친구를 30명이나 붙여주었습니다.

30명이나 되는 사람을 신랑 친구로 7일간의 잔치에 참석시킨 것을 보십시오. 신부의 집이 딤나에서 제법 부유한 집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유머와 놀잇거리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연회(宴會) 때 수수께끼를 내어 흥을 돋우는 풍습이 있습니다. 삼손이 이런 관습을 이용하여 기한 1주일의 수수께끼를 내겠다고 제안합니다(12).

삼손이 수수께끼를 내는 것은 그들과 흥을 주고받는 세상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일을 통해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입니다(04).

삼손의 제안에 블레셋 청년 30명은 그들이 함께 머리를 짜내면 충분히 풀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그 제안에 동의하였습니다. 답을 맞히면 삼손이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주고 청년들이 답을 못 맞히면 반대로 해 달라는 수수께끼가 시작되었습니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삼손이 낸 수수께끼 내용은 자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식 문제입니다. 블레셋 청년들이 그 답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문제의 답을 알 턱이 없는 딤나의 결혼식 30명 친구는 삼손의 아내만 붙들고 늘어집니다.

빨리 신랑을 꾀어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오라고 옥죄입니다. 답을 가져오지 않으면 너의 부모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합니다(15). 이런 상황에 부닥치자, 삼손의 아내는 울면서 삼손에게 매달립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알려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애원입니다. 그래도 말해주지 않으니, 당신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단정하자 그만 삼손은 답을 알려줍니다(17, 18).

 

이 문제를 이스라엘 청년이 받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문제가 이스라엘 일반 평행 시()의 형태이기 때문에 능히 풀었을 것입니다.

한번 풀어봅시다. 먹는 자와 강한 자는 같은 것을 지칭하면서 서로의 내용을 보충하는 것이고, 먹는 것과 단것도 같은 의미로서 서로의 내용을 세밀하게 밝혀주는 형태입니다. 제가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

먹는 자와 강한 자는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동물 중에서 강한 동물은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먹는 식물(食物) 중에서 가장 단 음식은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답은 사자와 꿀입니다(18). 결국, 답이 노출되어 삼손은 약속한 대로 문제의 답을 알아맞힌 친구들에게 겉옷 30벌 속옷 30벌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이때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합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 아스글론으로 가서 그곳 주민 30명을 쳐 죽여 옷을 노략질해 왔습니다. 그리고 답을 맞힌 자들에게 주고는 화가 나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20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삼손의 아내가 삼손과 며칠 동안 사귄 30(11) 중 한 사람에게 다시 결혼해 갔습니다. 여지없는 삼손의 결혼 실패 모습입니다.

삼손의 관점에서 보면 무척 마음 상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실인의 삶을 이탈한 삼손을 사용은 하셨지만, 삼손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갔다면 더 복된 일을 만났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삶이 있습니다. 먼저 허리 위의 삶으로서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고 두뇌에서 나오는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다음으로 허리 아래의 삶으로서 머리도 없고 가슴도 없이 오직 본능만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한번 방종의 길을 걸으면 사람의 기본 법칙을 잊어버리고, 이성도 잃어버리고, 가정도 잊어버려서 무질서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삼손은 아내에 대한 정을 생각하여 아내를 찾아갔습니다. 친구들이 저지른 잘못도(14:15~18) 용서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예물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이 따뜻한 마음과 호의(好意)는 장인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버립니다. 장인이 삼손의 출입을 막아서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15:02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믿음의 가족 여러분, 삼손의 결혼을 생각해 봅시다. 신령한 부분에서 삼손은 그 가문과 이스라엘 전체에 혼란을 초래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신성한 결혼이 놀잇거리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삼손은 계속 혼탁한 삶을 살다가 사사로서 마지막 불행한 삶으로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