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열두 사사

[제12대 사사 삼손] ①삼손은 나실인 복을 받았습니다(13:01~2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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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들릴라(Samson and Delilah, 1949)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작품으로서 이 영화는 삼손을 체구가 무척 크고 근육질인 미남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의 삼손이 그렇게 잘생긴 인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부분 영화는 그 특성상 보는 사람에게 주제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 우람하고 잘생긴 미남 배우를 기용합니다. 삼손도 그런 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이런 특별한 사람이 둘 있습니다. 다윗이 상대하여 무너뜨린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12대 사사 삼손입니다.

 

골리앗은 체격이 특출했던 인물로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소개합니다(삼상 17:04). 고대의 측량법에 근거하여 한 규빗을 약 45cm, 한 뼘을 약 13cm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골리앗의 신장은 약 283cm(NEB 274cm, NIV 270cm)입니다.

이렇게 신장이 큰 사람을 골리앗에 비유하지요. 우리나라 모든 조선소에서 최고의 대형 장비 크레인 이름을 골리앗이라고 부릅니다.

삼손은 힘이 센 사람으로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블레셋의 회당을 받치고 있는 두 기둥을 무너뜨려 블레셋에 대한 복수를 하였습니다. 이 삼손에 대해서는 힘이 매우 센 이미지 외에 또 하나의 이미지가 사람들 뇌리에 있습니다.

만나서는 안 될 들릴라와 결혼함으로 불행한 죽음을 맞은 이미지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제12대 사사 삼손에 대하여 3회로 나누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삼손에 대한 첫 시간으로 삼손은 나실인 복을 받았습니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1. 삼손은 나기 전에 나실인으로 지정받았습니다.

 

0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삼손이 나기 전 이스라엘 시대 상황이 01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는 전제(前提)입니다. 지금까지 사사 시대의 전례(03:07, 10:06)를 볼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을 숭배했다는 뜻입니다.

사사 시대 때 이스라엘이 행한 악의 형태를 볼까요?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어 구원해 주시고, 또 우상의 길로 기울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다시 새로운 사사를 보내어 구원하시는 악순환 역사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11대 사사 압돈까지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의 길을 따라감으로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블레셋 손길에 넘기셨습니다.

 

이 사십 년은 이스라엘이 외적으로부터 최고로 길게 고통을 받은 기간입니다. 이전까지는 제4대 사사 드보라가 등장할 때 가나안 왕 야빈에 의해 압제를 당한 20년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 여러 섬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지대로 이주해 온 해양 민족입니다. 인종학으로 보면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예입니다.

일찍 도시국가를 형성하여 문명과 문화가 발달한 민족입니다. 가나안의 후기 원주민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사 시대 이후에도 계속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삼손이 이스라엘에 등장할 무렵 이스라엘의 유적지와 유물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대부분 술병, 술 항아리, 주전자 등이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향락 문화와 쾌락주의를 짐작하게 하는 물건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문화로 흥청망청하였음을 증명하는 근거입니다.

음주 문화가 발달하면 그 시대는 망하기 마련입니다. 쾌락과 사치와 방종의 삶은 술에서 시작됩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하면서 술 마실 일을 만듭니다. 주로 사업상, 체면상, 도의상 어쩔 수 없다고 핑계합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월요일은 원래 마시는 날이고, 화요일은 화끈하게 마시는 날, 수요일은 수없이 마시는 날, 목요일은 목이 터지라 마시는 날, 금요일은 금방 마시고 또 마시는 날, 토요일은 토하고 마시는 날, 일요일은 일일이 술집을 찾아다니면서 마시는 날이라 합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본서 저자 사무엘(?)은 소라 땅에 거주하는 단 지파의 한 슬픈 가정을 소개합니다. 그 가정의 가구주는 마노아입니다. 왜 슬픈 가정이냐 하면 마노아의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이야 결혼도 포기하는 시대인 만큼 아들 없는 것이 그렇게 슬픔이 됩니까? 그러나 그 옛날에는 자식이 없음을 수치와 슬픔으로 여겼습니다(삼상 01:05, 06).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초자연 역사로 태()를 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03). 아들을 주시되 그저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일할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들 주시는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쓰임을 받는 나실인이거나 특별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실인(נְזִ֧יר 나지르). 하나님께 성별 되어 바쳐지는 사람을 뜻합니다( 06:02~08). 나실인의 가정으로 지정되면 부모가 경건한 믿음으로 세속과 구분하여야 합니다. 먼저 독주와 포도주까지 마시지 않고, 음식도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아야 합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난 아들도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깎지 않고 경건하게 생활해야 합니다(04, 05). 이 나실인으로 지정되어 태어난 사람 중에 삼손과 사무엘(삼상 01:11)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레갑 자손들과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2. 나실인 삼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마노아 부부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실인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열 달 동안 상당한 믿음의 준비를 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127:03). 마노아 부부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시니 기도로 준비했을 것은 능히 짐작됩니다.

우선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놓고 많이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인생이 이름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שִׁמְשׁ֑וֹן)이라고 지었습니다. 태양처럼 빛난다는 뜻입니다.

 

4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압제한 블레셋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노아에게 이런 특별한 복을 주시자 마노아는 아내와 함께 기도하면서 삼손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맞춤형으로 양육하였습니다.

삼손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삼손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믿음 양육을 따라 은혜로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정한 사람은 성장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습니다그 예로 사무엘을 들 수(삼상 02:26)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성장하셨습니다( 02:52).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복은 하나님 편에서 먼저 사람에게 손길을 펴십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따라 믿음의 복, 지혜의 복, 건강의 복, 초자연적인 힘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별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05….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되는 일과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나실인의 복은 개인으로는 소속 지파와 국가 전체에서 신앙의 명문 가문으로 세워집니다. 삼손은 이 사실을 잘 알고 그에 걸맞게 생활하였습니다.

삼손은 훗날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치고 조국에 자유를 선물해야 하는 사사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특별한 복을 주셨고, 이삭에게도 특별한 복을 주셨고, 야곱에게도 특별한 복을 주셨고, 요셉에게도 특별한 복을 주셨고, 욥에게도 특별한 복을 주셨고, 다윗에게도 특별한 복을 주셨고, 세례 요한에게도 특별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차고 넘치는 복이 있습니다( 144:15).

우리 믿음의 가족도 신령한 복 받기를 원합니까? 신령한 웃음이 넘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이런 복은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마노아 가정에 복을 주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누구에게나 꼭 같이 복을 주십니다( 03:09).

 

 

3. 나실인 삼손에게 때가 되매 여호와의 영이 임합니다.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소라는 예루살렘 서쪽 약 20km 지점에 있고 에스다올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23km 지점 단 지파의 성읍입니다( 19:41). 삼손은 소라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이후 성장하면서 두 지역의 중간 지대쯤 되는 마하네단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앞날의 사역 거점을 삼기 위해서 그리한 것 같습니다.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25절을 유의해 보십시오.

앞서 우리가 사용한 개역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이렇게 나옵니다. 두 동사 감동하다. 움직이다 의 국어 의미는 같습니다.

 

그러나 원문에서 사용한 단어 לְפַעֲמ֖וֹ(파암)은 강하게 몰아넣는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였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일반으로 성령님의 감동은 지혜, 말씀, 예언 은혜 충만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특별히 삼손에게는 전무후무한 완력으로 임하였습니다(14:06, 19, 15:04, 15).

이에 삼손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자기를 쓰시는 감동을 따라 기지개를 켰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지배를 받은 40년 역사를 부모님과 이웃에게서 들었습니다. 나실인의 생활을 통해서 자기의 사명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명감을 아는 신령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영의 안테나가 세워져 자기의 존재감을 잘 깨달았습니다. 그 존재감이 깨달아질 때 몸과 마음이 성령님께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 연결된 삶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자기가 특별한 존재임을 아는 자는 세미(細微)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삼손은 부모님께서 들려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05) 가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에 지배당하는 단 지파와 이스라엘에 대해 염려합니다. 그러나 삼손의 소속 단 지파 사람들은 위기감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삼손보다 오히려 블레셋 편을 듭니다.

 

삿 15:11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2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지금까지 등장한 사사들은 한 사람이라도 힘을 더 모으려고 노력하였고 협력자도 있었습니다. 반면 삼손은 협력자가 없어서 혼자 일합니다. 왜 사사로 부름을 받은 삼손에게 동족이 협조를 안 합니까? 그 이유는 블레셋의 완화정책 때문입니다.

블레셋은 철기문화 개발로 군사력이 든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태어날 즈음에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힘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라 화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스라엘과 교역하고 조공을 받으면서도 자녀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결혼하고 왕래하도록 허용하는 화친 정책이었습니다. 이런 세상 자유로 인해 하나님을 잊고 말았습니다.

 

삼손의 사역 현장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힘들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만큼 이스라엘의 신령한 감각이 무너진 탓입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어디 있습니까? 육체가 고통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가 문제 아니라 영의 감각이 훼손된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약 7년 정복 전쟁 끝에 지파별로 땅을 분배했습니다. 어떤 지파는 전쟁을 마치고 좀 편하게 지냈고 어떤 지파는 계속 전쟁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여호수아로부터 가나안 서부 산간 지역과 해변에 이르는 대단히 비옥한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19:40~46).

그러나 원주민 아모리 족과 전쟁에서 쫓겨 산지로 밀려났습니다. 요셉 족속이나 유다 지파처럼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패전했습니다.

분배받은 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최북단 라이스로 피난하였습니다( 18:01~31). 일부는 다른 지파의 땅에 흩어졌고 또 일부는 계속 정착지를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단 지파가 왜 정복 전쟁에서 패하였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 지파 출신 삼손의 부모는 만난을 무릅쓰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을 믿음으로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나실인 삼손을 얻는 복을 받았습니다.

나실인 가문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터전을 잃으면 안 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신령한 터전을 잘 가꿉시다. 나오미의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 가서 살다가 큰 화를 당한 것처럼 되지 맙시다. 믿음의 터전을 잘 가꾸어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