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내 모습이 가라지와 같습니까? (마 13:24~30, 36~4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0.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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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는 김모 여사 박사 학위 논문 표절로 인해 가짜 박사다. 아니다 논란이 한창입니다. 이 일이 발단되어 문화, 연예,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가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로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전 영역이 가짜 판입니다.

간단히 나열해 보겠습니다. 우선 여자분들 마음을 빼앗아 가는 명품 핸드백부터 봅시다. 인터넷에서 50만 원 이하에 사면 무조건 가짜입니다.

어떻게 유통되는지 가짜 문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유통 중에 스크래치가 생겨서 정상가 판매가 어려워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 팝니다. 이런 문구에 걸려들면 짝퉁 사게 마련입니다.

 

가짜 미술품, 가짜 휘발유, 가짜 상품권, 가짜 양주, 가짜 목사 등 상상을 초월하는 가짜 판입니다. 요즘 삼겹살로 오인하게 하는 문구 보셨습니까?

제주 돈 대패 살 얼핏 보면 제주 돈 대패 삼겹살처럼 느껴지나 실제 삼겹살은 아닙니다. 후지 부위를 좀 얇게 썰어 놓았을 뿐입니다. 만일 진짜라면 크게 진짜 삼겹살로 표시하겠죠? 가짜는 주로 대학가 주변 식당가에서 많이 판매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도 알곡 같은 신자 가라지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완벽한 교회 꿈같은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그 교회가 덜 건강한 교회인가 더 건강한 교회인가 차이입니다. 이런 명암(明暗) 구조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다 보면 열심히 믿음 생활하다가도 더러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향 교회를 찾는다고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혹 찾은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 들어가면 이내 시끄러운 교회 됩니다. 내가 복을받는교회 만드는 일에 작은 역할 하겠다는 마음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곡과 가라지로 비유되는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이 왜 교회 안에 들어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내 모습이 가라지와 같습니까?」로 정했습니다.

 

 

1. 곡식에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가 7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을 일명 천국 비유장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첫 비유로 주신 말씀이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그 내용은 네 종류의 씨로서 길가에 떨어진 씨, 돌밭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 좋은 땅에 떨어진 씨입니다.

이 가운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100배 60배 30배로 결실하였습니다. 여기 씨가 보리인지 밀인지 정확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씨든지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들려주신 일에 대한 의미는 같습니다.

 

굳이 구분하면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맥추절에 대한 말씀을 보아 씨는 보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맥추절은 10월경 파종해서 이듬해 5~6월에 추수하고 추수한 열매를 7월 첫째 주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올려드리는 절기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을 통해서 속량에 대한 진리를 말씀하실 때는 한 알의 밀로 비유하셨습니다(요 12:24).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좋은 땅에 뿌린 씨 가운데 가라지가 섞여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잘 때 원수가 그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곡식 가운데 있는 가라지가 자랄 때는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 자랄 때는 곡식과 거의 비슷하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 가라지로 확인이 됩니다.

 

가라지(ζιζάνιον 지자니온).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흔히 자라는 잡초로서 곡식인 보리나 밀과 비슷하게 생긴 독보리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본 분은 아실 것입니다.

벼농사에는 불청객처럼 함께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피라는 잡초입니다. 요즘은 제초제가 개발되어 농사짓는 것이 그나마 편리합니다.

그러나 한때는 이 피를 제거하기 위해 농촌에서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피는 성장이 왕성합니다. 벼의 생육을 방해하고 그냥 두면 벼농사에 지장이 많습니다.

농부는 이 피를 제거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만일 농부가 피를 보고도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논 전체에 확산합니다. 이 피를 보는 사람마다 그 농부가 누구인지 몰라도 몹시 게으르다며 혀를 끌끌 찹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이 독보리를 제거할 만한 영농법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가라지는 곡식보다 훨씬 뿌리가 발달해 곡식 뿌리와 엉켜 있을 때는 제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라지를 제거하는 일은 추수 때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혹 잘못해 가라지 열매를 먹었을 경우 급한 설사와 구토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납니다. 심하면 생명까지도 잃는 무서운 독초입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에게 이것을 뽑기를 원하십니까(28절) 하고 묻자 주인은 종들에게 가만두어라. 가라지 뽑으려다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한다고(29) 하였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마귀는 계속해서 세상과 교회에 가라지 같은 인생을 심어놓고 악의 세력을 키워갑니다. 불신앙의 세력 배후에는 반드시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의 최종 목표는 신자와 교회를 대적하여 무너뜨리고 많은 영혼을 실족시키는 일입니다.

 

 

2. 예수님께서 왜 가라지 비유를 들려주십니까?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예수님께서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기에 이런 가르침이 필요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성경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집에서 나와 전도 일정을 위해 여러 곳을 다니다가 다시 가버나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가리지 비유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라지 비유에 대해 신령한 적용을 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첫째,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좋은 씨가 뿌려진 밭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셋째,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즉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좋은 씨는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반대로 가라지는 공동체에 있는 불신자를 뜻합니다. 악한 자의 아들들이란 표현을 보십시오. 문서인 성경 기록이기에 점잖게 표현하였습니다. 

실제 예수님의 속 마음은 악한 자의 새끼들이라는 과격한 표현입니다(마 23:33). 왜냐하면 가라지로 비유되는 악한 자의 아들들 운명은 사탄의 지배를 받다가 마지막에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이런 영적 적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복을받는교회 안에도 가라지와 같은 불신자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는 빨리 솎아내야 합니다. 오래 묵혀 둔다고 보물단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물단지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놓고 판단할 때 누가 곡식 같은 신자이고 누가 가라지 같은 신자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알 수만 있으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런 일은 오직 예수님만 아실 뿐 세상 그 어느 사람도 알 수 없습니다. 혹 사람 눈에 가라지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택한 자라면 후에 알곡으로 등장하여 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 생각으로 홀대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가라지 같은 자 색출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교회 안에 비 진리와 악이 존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도 착각에 불과합니다.

 

혹 분명하지도 않은 일을 희미한 인간의 판단력으로 가라지 같은 요소라고 판단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욕망을 가집니까? 결과는 곡식까지 상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가끔은 사설 가정 기도원 같은 곳에서 소위 영빨(?) 있다며 예언 기도한다는 광고를 합니다. 왜 그런 광고를 합니까?

예언 기도 받으려는 수요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 가면 가정파탄 만나기 쉽습니다. 갈 곳 안 갈 곳 잘 구분해야 합니다. 

지상교회는 항상 가라지와 같은 거짓은 함께합니다. 이런 현상은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까지 계속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29, 30). 

 

세상 어느 곳을 갈지라도 가라지는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나라, 어떤 조직, 어떤 단체, 어떤 직장, 어떤 교회에도 가라지 같은 존재가 있는 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도 가라지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사랑의 인내와 사랑의 참을성이 부족한 면을 조심스럽게 경고하고자 하심입니다.

 

 

3. 가라지를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지막 때에 가라지를 다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습니다. 이 일을 누가 합니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일은 농부의 몫입니다. 신령한 의미의 추수꾼은 하나님의 대리자 천사가 합니다.

주인이 추수하는 그 날까지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것을 허락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마지막 때까지 교회에 악인과 의인이 공존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날에는 가라지를 거두어서 불에 사르는 것같이 무서운 멸망이 임합니다. 가라지 같은 사람은 영원한 심판을 받아 저주와 멸망 구덩이에 던짐을 받습니다. 이런 무섭고 두려운 일은 상징이나 교훈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를 결정짓는 실제입니다(42).

 

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풀무불은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아궁이를 가리킵니다. 풀무불은 마지막 때 하늘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 영원히 형벌을 받는 장소입니다.

이를 불 못 또는 지옥으로 표현합니다(계20:15). 모든 불의한 것이 정리되고 이곳에서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에 처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갈게 된다는 의미를 보십시오. 물어뜯는다는 뜻입니다. 굶주림에 처하여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모습이나 분노로 씩씩대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행 07:54).

 

마귀는 파괴와 이간질하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살인자(요 08:44)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언제 밭에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까?

사람이 누워 잘 때입니다. 여기서 잔다는 말은 농부의 태만함을 꼬집는 말이 아니라 농부 모르게 슬그머니 악행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보복하기 위해 상대방 밭에 가라지와 같은 잡초를 뿌리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였습니다. 만일 위반하면 큰 징계를 하였습니다.

사탄은 자기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무너뜨리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닙니다. 지금도 찾아다닙니다.

베드로는 지난날 깨어있지 못하여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쓰라린 경험을 토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

 

벧전 05:0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실 악한 어둠의 세력은 주로 사람이 일하지 않고 경계(警戒)도 하지 않는 평화와 안식의 시간인 밤에 주로 활동합니다. 덧뿌리고 갔다는 말을 보십시오.

한 번 뿌린 씨 위에 다시 씨를 뿌렸다는 말로서 영농 원리에 맞지 않는 행위입니다. 율법에도(레 19:19, 신 22:09) 다른 씨앗을 섞어서 뿌리지 말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를 해치는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비신앙과의 타협을 상징하는 말이며, 동시에 신령한 공동체 안에 거짓의 요소가 생성하고 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상교회는 하나님 아들과 마귀 아들이 섞여 있습니다. 가라지 비유의 핵심으로서 마귀가 공동체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 들어오지 못하도록 영 분별 잘해야 합니다.

 

요일 04:0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마지막에 분리되듯 가라지와 같은 자가 가는 풀무불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불의 온도는 섭씨 1,000도 이상 됩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뜨겁습니다. 또한 풀무불은 지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 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하셨습니다(마 03:12). 그곳은 소망이 없는 세세토록 고통 가운데서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그곳은 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계21:18). 뜨거운 불 때문에 고통스럽고 유황이 탈 때마다 유독가스가 심하게 풍겨 나오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라지 같은 자를 보았을 때 당장 뽑으라고 하지 않고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도 가라지 같은 자는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긴장을 풀지 말고 끊임없이 믿음의 싸움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그 날부터 사탄과 신령한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살다 보면 가라지와 같은 사람 때문에 마음에 상처받을 때가 있고 괴로움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 맡기고 계속 믿음의 싸움을 하여야 합니다.

 

잠 16:0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