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을 열어가는 말씀은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01) 입니다. 그 일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아람의 벤하닷 왕이 북 이스라엘 왕국을 침략해 옴으로 멸망할 뻔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스라엘을 건져주신 일입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였으면서도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생활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령한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무디어진 이유는 불신 여자 이세벨을 왕비로 맞은 탓입니다. 불신 아내를 맞은 아합은 이세벨이 가져 온 우상 바알과 아세라 섬기는 일을 북이스라엘에 허락함으로 백성들을 믿음에서 타락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불신 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아합은 일국의 왕이면서도 그 욕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사사로운 욕심 채우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취해서는 안 되는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국가 권력을 동원한 일과,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모른 체하는 아합,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포도원을 지키려 한 나봇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빼앗으려는 아합과 지키려는 나봇」 이런 제목이 되겠습니다. 함께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 같이 인사를 나눕시다. 은혜 많이 받읍시다(아멘).
1. 아합은 부려서는 안 될 욕심을 부립니다. |
0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북이스라엘 7대 왕 아합이 사용하는 별장 옆에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경작하는 작은 포도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이 별장에 올 때마다 포도원이 하도 탐스러워 나봇에게 제안합니다. 자기가 사서 정원을 만들겠으니 팔라는 제안입니다.
채소밭(לְגַן יָרָ֗ק). 여기서 채소(יָרָ֗ק)는 녹색의 풀 종류이며, 밭은(לְגַן) 정원입니다. 채소밭은 푸른 정원을 가리키는 말로써 주로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피하는 장소로 활용되며, 종종 우상 숭배의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사 01:29; 65:03).
매매조건은 대토(代土)를 원하면 더 크고 넓은 토지를 줄 것이고, 팔기를 원하면 넉넉하게 값을 치러 주겠다는 제안입니다. 왕의 권력으로 압박하여 그냥 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값을 치러 주겠다는 제안이고 보면 상당히 후하게 거래를 제안한 셈입니다.
그런데 나봇은 이 제안을 단번에 거절합니다. 가격을 더 받기 위해 줄 당기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의 유산을 다른 사람에게 매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왕의 제안에 응할 수 없다는 거절입니다(03).
오늘의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나봇은 좀 고지식한 인물같이 보입니다.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포도원을 넘기면 큰 이익이 됩니다. 부동산 중개업자 관점에서 보면 매우 권할 만한 일입니다. 대토하면 분명히 이익되는 일인데도 나봇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라며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금하시는 근거가 어떤지 보겠습니다(레 25:23~28).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제비뽑기로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열두 지파는 자기들이 분배받은 땅을 자기 지파 족장들에게 분배하였고, 족장들은 가족 단위로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한번 분배된 땅은 경계표를 세워 누구든지 침범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이스라엘의 토지 공개념 원리입니다. 이 토지 공개념 원리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가 비록 왕이라도 토지의 소유 관계를 함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옛적부터 이스라엘 사람은 조상의 유산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것이 물질 유산이든지, 정신 유산이든지, 일상생활 전통이든지 계승하는 것을 자손들의 의무로 알았습니다. 족장들의 경우 아브라함의 신앙과 생활을 이삭이 계승하였고, 이삭은 자기 아들 야곱에게 그대로 전승하였습니다(창 28:01-04).
시대와 환경이 변하더라도 신앙의 유산을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 정신입니다. 만일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산을 부득이하여 팔게 되면 가까운 친척에게 팔되 일정한 기간 안에 반드시 사들이도록 매매증서에 기한까지 명시하였습니다.
토지를 판 사람이 능력이 안 되어 사들이지 못하면 그때는 토지를 산 사람도 50년간 사용하다가 희년(禧年)이 되는 해에는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봇은 왕의 후한 제안에도 망설임 없이 토지매매를 거절하였습니다.
토지 공개념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기본 인권은 누구든지 간섭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권력자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아합은 이런 이스라엘의 토지 공개념을 알면서도 은근히 왕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발상입니다. 부려서는 안 될 과한 욕심이요 자칫 멸망에 이르는 욕심입니다.
2. 이세벨은 과한 욕심을 공권력으로 채웁니다. |
0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아합은 이스라엘 왕이지만 이스라엘의 토지 공개념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은 마음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잠도 안 오는 법입니다. 밥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속만 타들어 갑니다.
계속 나봇의 포도원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침내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다가와서 무슨 근심이 있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아합은 이세벨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아합의 말을 들은 이세벨이 말하기를, 당신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런 일로 고민을 해서 되겠습니까? 당장 그 포도원을 갖다 바칠 테니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07). 이세벨(אִיזֶ֣בֶל)이 누구입니까?
북이스라엘과 국경을 이루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서 아합이 나라의 안정을 위하여 정략적으로 결혼한 여자입니다(왕상 16:31).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에 의하면, 시돈 왕 엣바알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을 겸임한 자로서 그의 딸 이세벨을 통하여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보급하고 여호와 신앙을 말살하려는 계략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의 계략대로 이세벨은 아합과 결혼한 후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가지고 와서 먼저 아합부터 섬기게 했으며, 이어서 신하와 온 국민에게까지 섬길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우상 주의자 이세벨이 여호와 신앙과 이스라엘의 토지 공개념을 어찌 알겠습니까?
오히려 남편 아합을 우상 숭배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하기 위하여 악한 계략을 펼칩니다. 먼저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왕의 인을 찍고 비밀리에 나봇이 사는 성읍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08).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09절에 보면 나봇을 죽이기 위해 금식을 선포하는 일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금식 선포는 공동체 내의 악행 및 죄에 대해 참회를 촉구하는 일입니다(삼상 07:06). 그러나 이 금식 선포는 곧 드러날 가증스러운 죄악으로 성읍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있다는 금식입니다.
거룩한 법을 악법으로 이용을 합니다. 그리고는 나봇을 피고인(被告人)의 신분으로 재판정에 끌고 나왔습니다. 닭도 모르고 재판정에 끌려 나온 나봇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처음에는 의아했을 것이나 이내 아합에게 포도원 매매를 거절함으로 꾸민 일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각본에 따라 불량자 두 사람이 나와서 나봇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합니다. 나봇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다. 돌로 쳐 죽여야 한다. 법에는 하나님을 향해 모독하거나 저주함은 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움을 입은 지도자들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정해 놓았습니다(출 20:07; 22:28).
이세벨의 간계를 모르는 성읍 사람은 불량배들의 증언을 믿고 나봇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공권력을 동원한 불의입니다. 스르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은 이세벨의 권력 앞에 의로운 한 생명의 잘잘못을 살펴보지도 않고 처형을 하였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불의에 동참한 것으로 봐도 됩니다.
3. 과한 욕심은 멸망을 불러옵니다. |
19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나봇을 죽이는 일에 이세벨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알리바이와 여러 정황을 갖추어 완전 범죄를 꾸몄습니다. 정말 완전 범죄입니까? 합은 자신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과 관계가 없습니까?
아내 이세벨이 악한 일을 하는 그대로 보고 있었으니 부부가 공모한 셈입니다. 현재의 권력으로 일을 꾸밀 때는 내 세상 같고 안전하게 일을 처리한 것처럼 보여도 뒷일은 어찌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 특히 약한 자,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데 선지자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냈습니다.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예언으로서 왕과 왕비 두 사람 모두가 파멸하게 된다는 심판의 예언입니다. 무서운 심판입니다. 왜 이렇게 저주의 심판을 당해야 합니까? 지나친 욕심, 품어서는 안 될 욕심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채웠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아합이 물질에서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한 나라의 왕인 이상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탐심에 눈이 어두워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였습니다. 그러면 아합이 그렇게 취한 포도원을 정원으로 잘 꾸며서 활용을 했습니까?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탐심으로 빼앗은 것은 자기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갖지 못합니다. 받은 것으로 족하게 여기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 인권이나 재산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인권이나 재산도 소중합니다.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억울하게 당하는 자들을 대신해서 갚아 주십니다. 이 일 후에 아합은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저주의 경고를 받고 풀이 죽어 다닙니다. 그러나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잘 못 된 일을 원상 복구하는 데 있습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텃밭으로 삼은 채 지냈습니다. 훗날 하나님은 예후를 들어 그의 집을 치셨고 이세벨도 처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사람이 갚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갚으십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아합은 불행한 죽임을 당합니다.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을 꾀어 길르앗 라못을 치는 전쟁에서 아람 나라의 한 병사가 아무렇게 쏜 화살에 맞아 병거 위에서 피를 흘리며 끌려가다 저녁때에 죽었습니다. 아합이 피를 흘리며 사용한 병거를 사마리아의 한 못에서 씻을 때 개들이 그 피를 핥았는데 엘리야가 나봇의 피를 핥은 개들이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한 예언 그대로입니다(왕상 22:38).
아합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고, 이어 요람이 왕이 되었을 때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요람을 죽였습니다. 이세벨도 자기 방에서 눈을 그리며 머리를 꾸미고 있을 때 누구든지 저 여자를 내던지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내시 두 사람이 이세벨을 들어 창밖으로 던졌는데 결국 엘리야 예언처럼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으리라는 예언대로 되었습니다(왕하 09:32-37).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나봇(נָב֣וֹת )의 이름은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서쪽 므낫세 지파 자손으로서(수 17:11), 이름처럼 그의 믿음은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스르엘에(בְּיִזְרְעֶ֑אל)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칭과 혼동을 하는데 분명히 다른 명칭입니다. 인명으로는 호세아 선지자 별명으로 사용되었고(호 01:04), 지명으로는 나봇이 포도원을 가꾸며 살았던 곳입니다. 나봇은 죽으면서까지 조상의 유산을 사수하려 했습니다.
반면 아합은 멸망 길을 가면서까지 욕심내어서는 안 될 것에 지나친 욕심을 내었습니다. 과는 자신과 아내 이세벨, 그의 자녀들 모두가 멸망하였습니다. 아합에게는 이미 사마리아에 화려한 왕궁이 있었고, 곳곳에 별궁도 있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마지막에는 불행한 길을 초래하였습니다. 한 라의 왕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며, 다음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작은 포도원을 차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면 맡은 자로서는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세상에 속한 탐욕 거리에 인생을 걸면 파멸을 만납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간과(수 07:01-26)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최후가 말해 줍니다(행 01:18). 김삼일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물질에 탐욕을 부리는 일이 마음에도 일어나지 않도록 믿음 관리 잘하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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