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어린이주일)보배로운 믿음을 내려줍시다.(딛 01:01~0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5. 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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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있는 성도를 더러는 세 종류의 곡식으로 비유합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은 각자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알곡 성도입니다. 겸손히 머리를 숙이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누가 알아주던지 안 알아주던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는 쭉정이 성도입니다. 쭉정이는 빈 껍질 아닙니까? 열매가 없으면서도 열매 맺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바람에 따라 날려 다니는 사람 말입니다.

셋째는 싸라기 성도입니다. 싸라기는 절미라고 하는 부스러진 쌀알입니다. 정미소에서 알곡과 싸라기를 구분하기 전에는 알곡 틈에 끼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분을 하면 알곡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녀도 온전히 믿지 않고, 십자가도 지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난이나 핍박을 당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알곡 같은 성도는 교회에 덕을 세우나, 쭉정이 같은 성도는 불신자 수준이라서 구분이 잘 됩니다. 반면 싸라기 같은 성도는 그 마음의 절반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불평과 분쟁을 일으켜서 봉사하는 사람의 마음마저 흔듭니다. 디도서는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와 더불어 목회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목회 사역에 관하여 지도하는 서신이기 때문입니다.

04절은 사도 바울이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말합니다. 수신자가 디도임을 밝히는 구절로서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으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이 말씀을 중심으로 보배로운 믿음을 내려줍시다. 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은혜 받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성도의 믿음은 보배로운 재산입니다.

 

0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믿음으로 사는 신자는 교회생활에서 3가지의 기본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화의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갖추어야 건강한 은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균형 잡힌 은혜 생활은 무척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말씀을 듣고, 기도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균형잡힌 믿음을 다듬어 가는 겁니다. 바울은 04절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디도에게도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과 디도가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믿음과 성화의 믿음으로 나눕니다.

 

먼저 구원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구원에 직접 관계가 있는 이 믿음은 내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02:0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다음으로 성화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생활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흔히들 특정인을 놓고 누구누구는 믿음이 좋다. 믿음이 약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럴 때 믿음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냥 믿는다는 말 한 마디면 그것으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겁니까? 정상 믿음은 알맹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알맹이가 있는 믿음입니다. 제가 알맹이라 하는 것은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공유합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성경의 인물들에서 시작되어 신앙의 선진들을 통해서 전수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알맹이가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것은 성경대로 믿는 알맹이 믿음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믿음이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면 맹인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일과 가나안 여자의 딸이 귀신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사건에서 알 수 있습니다.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48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바울이 디도에게 같은 믿음을 따라 된 참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디도가 바울의 믿음을 물려받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믿음으로 여기지 않고 믿음의 선진 들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이라고 밝힙니다. 보배로운 믿음은 이렇게 성경에 기초하여야 하며, 이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신령한 재산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보물입니다.

 

 

 2. 바울은 보배로운 믿음을 잘 내려줍니다.

 

0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참 아들 된 디도에게. 주안에서 볼 때 매우 복된 표현입니다. 이 말에서 바울이 디도를 얼마나 신뢰하며 사랑하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알맹이 믿음을 내려 줄 때는 그 믿음을 전해 줄 대상을 잘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 대상이 여러분의 자녀이든, 주변 사람이든 잘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아들이라고 할 때 아들은 육신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바울은 독신의 은사를 받아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나의 참 아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디도도 자기처럼 믿음을 잘 받고 잘 지켜나가는 신실한 사역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부분은 주님 안에서 신령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아들이라는 표현을 한 곳은 이곳 외에도 더 있습니다. 바울은 딤전 01:02 절에서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딤후 01:02 절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바울이 아들이라 부른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오네시모인데 몬 01:10 절을 보면 이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갇혔다는 말은 바울이 로마에서 1차 옥에 2년 간 미결수로 갇혀 있을 때의 일을 말합니다(28:30).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사람이 믿음의 성장을 잘 이룰 때 양육자의 입장에서 혹 아들이라고 불렀던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반면 바울 자신이 지도를 하여 일꾼으로 세웠던 데마, 한때는 자신의 동역자라는(01:24) 호칭까지 받았던 데마가 세상으로 나갔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을 거의 앞둔 시점에서 데마의 행적입니다.

 

딤후 0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마의 일 외에는 바울이 믿음으로 양육한 사람들 모두가 성공의 길을 갔습니다. 로마서 16장의 바울의 인사장에 나오는 약 26명의 인물이 그 증거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믿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분명히 물려주고자 하는 믿음의 실체가 분명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부모의 마음으로 데살로니가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후의 일입니다. 3주 만에 핍박을 받고 베뢰아로 피신하였다가 아덴까지 왔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걱정이 되어 믿음의 아들 데모를 파송하였습니다. 이후 바울은 고린도로 옮겨 왔지만 계속 데살로니가교회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디모데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잘 자란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이후 바울은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살전 01:0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의 성숙에 대해 더 말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양육이 잘 된 데살로니가교회, 언제나 자랑하고 싶은 교회로 발돋움 하였습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의 일로 소문이 날 수 있습니다. 많이 모이는 교회, 재정이 넉넉한 교회, 유명한 사람이 많이 오는 교회, 건물이 큰 교회 등, 그러나 믿음이 좋은 교회, 믿음이 좋은 성도라는 소문 보다 더 좋은 소문은 없습니다.

 

 

 3. 믿음을 유산으로 내려주어야 합니다.

 

22:0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솔로몬은 21세에 왕이 되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40년 동안의 통치 경험을 토대로 기록한 메시지가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잠언은 특별히 자녀들에게 남긴 글로서 01장부터 07장까지는 각 장마다 내 아들아 훈계를 받으라,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는 메시지로 시작합니다. 요약하면 믿음의 유산을 내려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불행한 일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성경 역사에서 믿음을 내려주지 못하여 불행을 당한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 예로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과도기 시절 대제사장 엘리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문제는 엘리의 아들들이 세습으로 제사장을 물려받은 데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두 사람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고 밝힙니다.

아니 제사장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소에서 살았고, 성소의 모든 종교의식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면 이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모른 것이 아니라 신앙의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삼상 0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 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 하게 하는 도다.

 

대제사장 엘리가 매우 늙어서(22) 두 아들을 말로 책망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망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엘리가 아무리 늙었다 해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닙니까?

그러면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타락과 방종의 길로 치닫고 있을 때 두 아들의 행위를 그냥 적당하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엄한 징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는 아들들의 추문을 듣고 징계가 아닌 가벼운 훈계 정도만 합니다. 믿음의 유산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멸망을 내려주는 일을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의 계승은 부모인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를 놓고 지금 이 순간에 평가할 때, 아니면 우리가 세상에서의 삶을 마쳤을 그때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를 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저 분은 진정 내 믿음의 아버지였습니다. 저 분은 진정한 내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이런 소리는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때 가능합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부모님이 물려주고자 하는 믿음의 실체가 분명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계승은 부모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저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부모님의 믿음의 영향력과 기도 때문입니다. 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제 우리가 자녀들에게 또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재산, 교육, 물질, 신앙 등에 있어서 잘 판단하고 물려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인생의 쓰라린 낭패와 고난을 내려주는 결과가 됩니다. 다음 세대를 바라보며 믿음을 전달하여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무겁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먼저 가까이 있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내려주기를 원합니까? 물질입니까? 그것도 귀한 일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성도는 교회생활에서 기본 3가지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화의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인데 이 가운데 보배로운 믿음을 물려주는 일이 우선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신문에 난 기삿거리입니다. 이 내용은 극히 간단하면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 번쯤 음미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어린이가 설날에 세배하러 가다가 길에서 5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는 새해 첫날에 생긴 좋은 징조라고 좋아하였으며 이런 행운이 계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날부터 이 아이는 길에 돈이 떨어져 있지는 않나 하고 길을 걸을 때마다 땅 아래만 보고 다녔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복도나 운동장에 동전이 떨어져 있지는 않나 하는 데만 정신을 쏟았는데 그게 버릇이 되어 죽는 날까지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다녔습니다.

 

그 덕에 그는 평생 5백 원짜리 동전 수천 개를 주었고백 원짜리도 수없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깨는 굽어들었고, 한 번도 높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성격은 이기적이고 외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비가 갠 다음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무지개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녁 해지는 장엄한 저녁노을을 한 번도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새들의 즐거운 노래 소리도 듣지 못하였고, 붉게 타오르는 단풍도 바라보지 못하였으며,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소녀들의 활짝 핀 웃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잘못되면 허망하게 인생을 끝내기 싶습니다. 우리는 판에 박은 일에 얽매여서 인생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잊고 살기 싶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의 믿음을 온전히 전해 주고 싶은 믿음의 정체성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디도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믿음의 계승입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도에게 자신이 믿는 그 믿음을 내려주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이날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내려주는 일에 다시 한번 세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