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당에 거지 청년이 들어와 주인에게 공짜 음식을 부탁했습니다. 주인이 보니 그 청년은 행색이 남루해 보이는 데다 매우 배가 고픈듯하여 어떤 음식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식탁에 자리를 잡은 그는 그 집의 최고급 요리를 주문했습니다.
주인은 어이가 없지만, 동정심이 생겨 그 집의 최고급 요리를 그에게 대접했습니다. 아주 맛있게 음식을 먹은 그는 주인에게 담배까지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는데 공교롭게도 고액권 지폐 한 장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본 주인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돈이 있으면서 공짜 음식을 먹느냐며 돈을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거지 청년은 공짜로 음식을 주기로 하지 않았느냐는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음식값을 제하고 거스름돈만 돌려주었습니다.
거지 청년이 제발 그 돈을 돌려 달라고 사정했지만, 주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거지는 거스름돈만 받고 식당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송금하려고 은행에 가보니 그 돈은 위조지폐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짝퉁이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짝퉁 믿음이 있습니다. 어쩌면 삼손이 바로 그런 짝퉁 믿음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신분 나실인(נְזִ֧יר)으로 태어났음에도 마지막에는 머리카락을 밀었고 경건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힘과 놀라운 용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령한 은혜를 저버리고 불신자처럼 생활하다 마지막에는 힘도 잃고,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두 눈을 뽑힌 채 조롱거리로 전락하였습니다. 짝퉁 생활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 짝퉁 믿음을 진실한 믿음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오늘은 12대 사사 삼손의 세 번째 시간으로 「삼손은 삶의 마무리를 잘 하였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삼손이 사랑한 들릴라가 누구입니까? |
04 이 후에 삼손이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나실인으로서 삼손은 그의 삶이 매우 불행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세 여자를 만났지만 다 풋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만난 여자는 딤나에 사는 블레셋인이었는데(삿 14:03) 결혼식 기간 1주일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수수께끼 문제로 삼손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삼손이 화가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장인은 삼손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줄로 판단하여 딸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결혼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만난 여자는 가사에 사는 한 기생입니다(삿 16:01). 가사는 블레셋의 주요 5대 도시 중의 하나로서 애굽에서 서아시아로 통하는 길목의 전략 도시입니다.
삼손의 주요 활동지 소라에서(13:02) 약 60Km가량 떨어진 곳인데 삼손이 왜 이 먼 곳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거기다 삼손이 왜 나실인답지 않게 기생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그 이유도 의문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삼손의 두 번째 사랑도 하루 만에 끝나고 맙니다.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려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삼손이 먼저 알고 빠져나왔습니다.
세 번째 만난 여자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입니다. 소렉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1Km 지점에서 지중해변의 서북 방향으로 약 32Km나 뻗어 있는 골짜기입니다. 이곳에서 삼손이 세 번째 사랑의 여자 들릴라를 만났습니다.
삼손 하면 우리는 대개 전무후무한 힘을 가진 사람이며, 들릴라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다 죽임을 당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 들릴라가 삼손과의 관계에서 어떤 여자이며, 어떤 일을 하였는지 들릴라의 입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들릴라((דְּלִילָֽה)가 누구입니까? 이름 뜻은 요염하다, 약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들릴라가 블레셋인인가 아니면 이스라엘인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들릴라에 대해 일절 침묵합니다. 그래서 들릴라의 국적은 추정하는 정도입니다.
국적이 어디냐에 따라 설교의 방향이 다소 달라집니다. 일반으로 들릴라는 소렉에 사는 여자로서 블레셋 우상 신전의 종교 매춘부라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삼손의 고향 소라에서 가까운 소렉 골짜기 사람으로 보아 블레셋인과 결혼한 이스라엘인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통혼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들릴라를 놓고 이스라엘인이라는 전제로 오늘 말씀을 전합니다. 왜 들릴라를 이스라엘인이라고 추정하느냐 하면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이유는,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요 누구보다도 특별한 믿음의 감각을 익힌 나실인입니다. 이런 삼손이 블레셋의 매춘부로 일컬어지는 들릴라를 상대로 동거생활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블레셋 사람들이 들릴라에게 삼손을 잡는 현상금으로 은 천백 개를 주겠다는 흥정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은 천백 개면 어느 정도입니까? 노예 250명 이상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들릴라가 블레셋인이라면 굳이 이런 큰 금액을 제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블레셋 지도자들이 들릴라에게 조국을 위해서 수고해 달라는 애국심에 호소해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들릴라는 블레셋인의 물질 제안에 인생도 의리도 조국도 배반하는 길을 택합니다.
2. 삼손은 들릴라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설합니다. |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가 누구입니까? 이미 블레셋인들에게 물질의 매수를 당하여 삼손을 세 번이나 잡으려고 시도를 한 여자입니다. 지금 삼손과 들릴라, 서로가 만나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삼손에게 사랑도 중요하지만, 나실인으로서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들릴라도 물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사람을 밀고하고, 조국을 배반하는 일을 망설임 없이 행합니다.
물론 삼손을 잡으면 평생 안락한 삶을 누리고도 남을 돈을 쥐게 되고, 블레셋으로부터는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기에 목숨을 걸만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사랑도 좋고, 물질도 좋고, 권력도 명예도 좋지만, 서로가 대상을 잘못 정하면 불행이 됨을 역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경고를 보십시오. 불의를 행하여 얻은 권력이나 물질이 오래갔습니까?
그 길이가 참 짧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빌라도나(요 19:15, 16), 이스라엘에 우상의 올무를 놓고 물질의 길을 택한 발람 선지자나, 모세와 아론을 비판하고 나름대로 권력을 쟁취하려 한 고라당(민 16:32, 33) 이들 다 불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유 0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04절과 16절을 보면 삼손이 얼마나 들릴라를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16절에는 들릴라로 인해 삼손이 심히 갈등합니다.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데도, 이 들릴라는 삼손을 죽이기 위해 세 번이나 계략을 부립니다.
블레셋의 간첩이 되어 자기 목숨을 달라는 들릴라를 과감히 물리치지 못하는 삼손, 자기 목숨을 담보로 삼손은 들릴라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삼손은 들릴라가 자기 목숨을 세 번이나 노렸음에도 물리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들릴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랑을 받는 들릴라로서는 이게 어디 할 짓입니까?
삼손은 네 번째 자기 목숨을 달라는 들릴라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괴로워하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힘의 비결을 누설합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간첩에게 말입니다. 삼손이 죽음으로 가는 그 길을 왜 들릴라에게 알려주었습니까? 재물에 매수당한 여자를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니 설마 나를 죽음으로 이끌지는 않겠지 라고 단단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의 비밀을 누설한 바보 삼손, 들릴라가 세 번이나 속자 마지막에는 분명 갈라서자고 했을 것입니다. 삼손은 갈라서자는 말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힘의 비결을 내 던지고 들릴라를 택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좋아도 그 사랑이 물욕과 연관되어 있으면 순수한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그 예를 일명 탕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눅 15:11~16절의 작은 아들을 보십시오.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으로 로마(?)의 한 도시에 가서 향락을 누리며 잘 지냈습니다. 그때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지만 돈 떨어지자 다 떠나고 말았지 않습니까?
진정한 친구가 아니므로 떠났습니다. 이처럼 삼손의 곁에 있는 들릴라, 물질 때문에 다가온 그녀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신령한 것을 내어준 삼손은 불행을 만나고 맙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누설한 결과는 불행입니다. |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삼손이 신령한 것을 주고 택한 그 사랑이 천년만년이나 갔습니까? 지극히 짧은 순간의 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다 마지막에 죽임을 당한 모습을 기록한 곳이 삿 16장입니다. 그런데 16장 전체를 보면 들릴라가 삼손을 사랑했다는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들릴라는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삼손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자 했을 뿐입니다(18).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고도 삼손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줄 알았습니다. 머리털을 다 깎인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러 왔을 때 아직도 자기에게 힘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20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나실인이요 사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삼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머리털을 깎이고 적군에 사로잡혀 두 눈까지 뽑힌 채 맷돌을 돌리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이제 삼손은 더는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절대 강자가 아닙니다.
블레셋에게 위협의 존재는 더구나 아닙니다. 사사임에도 그 직분의 가치를 상실하여 두 눈을 잃은 체 옥중에서 가축이 돌리는 육중한 맷돌을 처절하게 돌리고 있습니다. 누설해서 안 될 하나님의 신령한 것, 신령한 힘의 원천을 세상 사람에게 내뱉으므로 당하는 수모는 삼손 스스로가 택한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잠 0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삼손은 이제 블레셋이 두려워 떨던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삼손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절망을 탈출하였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한 일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쾌락을 따르다가 철저한 파멸을 맛본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삼손은 사사로서의 사명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돌아보면서 회개의 자리에 앉자 하나님도 삼손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22절에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증거입니다. 한날은 블레셋 지도자들이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하여 다곤 신당에 모여 신에게 제사 지내는 종교축제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다곤 신당으로 데려와서 놀림감으로 삼아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삼손을 구경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삼손은 이때를 블레셋에게 복수하기 위한 기회로 삼고 준비를 합니다.
자기를 다곤 신당으로 데려가는 소년에게 집을 버틴 두 기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어서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안고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올립니다.
28….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기도의 결과는 다곤 신당이 무너지면서 잔해가 그곳에 모인 모든 지도자와 온 백성에게 덮였습니다.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습니다. 삼손은 마지막에 불신자와 같은 모습을 사명자의 삶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삼손은 열두 명 사사 중 유일하게 적에게 잡혀 죽은 비운의 사사입니다. 앞서 사역하였던 사사들은 모두가 자연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나실인의 언약을 받고 태어났음에도 불행한 죽음을 한 것은 나실인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 언약을 파기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삼손이 언약 파기를 함으로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것처럼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두 개의 블레셋 신전(Philistine temples)이 발굴되었습니다. 하나는 북부에 있는 텔 카실(Tel Qasile)과 다른 하나는 텔아비브 남부 21마일 지점의 고대 에글론이었던 텔 마크네(Tel Miqne)입니다.
두 신전 모두 하나의 독특한 설계 형태였는데 지붕은 두 개의 중심 기둥으로 지지가 되어 있었고, 그 기둥들은 나무로 만들어져서 돌로 된 기초들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기둥들은 1.8m(6피트) 간격으로서 만일 거대한 힘이 나무기둥을 돌 기초로부터 이탈시키면 지붕 전체를 내려앉게 할 수도 있는 설계이었습니다. 고고학의 발굴은 성경의 내용과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성경의 기록을 더욱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삼손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삼손을 위대한 신앙인의 반열에 등재 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히 11:32).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한순간에 어떤 일을 믿음으로 행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비록 삶의 한 모퉁이에서 넘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히 11장에 기록된 사람들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김삼일 가족들은 이제부터 주님 나라를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사명자로써 마무리를 잘 하십시오. 살아서도 교회를 위하여 살고, 죽어서도 교회를 위한 삶으로 마무리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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