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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제도의 유래와 확립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8. 3. 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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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제도의 유래와 확립


로마 카톨릭의 교황제도는 어디서 유래되었으며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속사도나 교부들의 서신들속에 어디서든 서로의 감독들에게 존경과 예의의 표시로 상대방을 높여 부른 것 외엔 로마 감독의 수위권을 인정하지는 않았었습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되면서 당시 유라시아, 아프리카 교회 등이 너무 방대하게 커져서 특히 교리 문제와 연계되면서 공교회로서 일치를 보이는 일이 힘들어 졌습니다.
또 교구들이 거대해지자 로마교구,콘스탄티노플교구,
안디옥교구, 예루살렘교구, 알렉산드리아 교구등 거대 교구들과 그 감독들이 차츰 정치적 수위권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레고리 로마 감독까지는 로마 교구가 상당한 정치적 위치와 재력을 가진 거대 교구였기 때문에 그 무게가 더해 있었을 뿐 수감독이나 교황이란 개념은 공식적으로 거절되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 로마 대감독은 당시 콘스탄티노플 감독이였던 단식자 요한이 자신을
보편적 총대감독(THE UNIVERSAL PATRIARCH)이라 스스로 칭하며 수위권을 확보하려 할 때 그것의 부당함을 지적,반대하면서 "누가 그러한 칭호를 쓰던 그것은 악하고 불경건하고 가증한 칭호"라고 여기며 요한이 쓰지 못하도록 반대하고 자신도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율리기우스가 그레고리 로마 감독을 보편적 교황(UNIVERSAL POPE)이라고 칭했을때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귀서의 서두에 저를 보편적 감독(교황)이라고 부르시며 제가 금지한 호칭을
저에게 일부러 쓰셨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치에 닿는 것 이상을 남에게 주시면 귀하는 그만큼 자신의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형제의 영예가 깍이는 것을 저는 영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레고리 감독은 어떤 대감독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POPE(교황,수감독)이나 PATRIARCH(총대감독)등의 호칭이 수위권을 상징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거나 가져서는 안 될 가증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음은 여러 서신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처음 초대교회들에서는 단지 행정상의 구분에 불과하던 교구의 차서가 교리상의
교회의 수위권으로 오해되고 비화된것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부터이며 로마 교회에 행정상 수위권이 주어진 것은 단순히 로마제국의 수도에 로마교회가 위치했던 것 뿐이었습니다.

황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후에는 당연히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제국의 위엄을 위해 당연히 로마교회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였고 제 1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코느탄티노플교회는 로마교회에 버금가는 권한을 갖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즉,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와의 수위권 다툼이 직접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결정에 대해 로마 대감독 레오는 맹렬히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통과되고 그뒤 콘스탄티노플 대감독 요한이 로마대감독 그레고리에 대해 도전장을 내었으나 앞서 설명한대로 그레고리 교황(대감독)은 레오와는 달리 로마교회의 수위권을 거절하면서 어떠한 교회나 사제의 수위권도 부정합니다.

(MGH EPISTOALE 2 31;MPL<Ⅷ.30> )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권위있는 그레고리 대감독(교황)이 끝내 반대한
로마교회의 수위권,즉 교황교리가 자리잡았는가? 콘스탄티노플의 요한대감독의 도전을 받던 그레고리 대감독은 끝까지 교황제도를 부정하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마우리케 황제의 후원을 받는 요한대감독은 끝까지 교회의 수위권(교황권)을 관철시키려 노력하게 되는데 그의 후계자 키리아쿠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벌어집니다. 황제 마우리케가 살해당하며 그 뒤를 이은 포카스는 큰 어려움없이 로마에서 대관식을 갖게 되고 그때 그레고리도 원한 적이 없던 교회의 수위권을 로마감독 보니파케에게 수여합니다.

그 내용은 - 로마 교회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것이었으며 이로써 로마교회의 수위권과 교황권에 대한 논재이 종식됩니다. 말하자면 교황의 수위권은 주님이 주신것이 아니라 황제 포카스가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황권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유는
동,서로마의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감독에 대한 다른 교회의 복종은 맘에 드는 경우만 따르고 아니면 거절하고 하는 정도엿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 생기는데 그것은 페핀의 정권 찬탈사건이었습니다.

페핀은 합법적인 황제를 추방하고 자신이 정권을 잡는데 이때 로마 대감독 자카리아스가 페핀에게 협조해 줍니다!(BOOK FOR MEDIEVAL!! HISTORY,) 페핀은 정권을 찬탈한 후 자신에게 협력한 자카리아스 로마 대갑독에게 드디어 모든 교회의 수위권을 주며 특히 재판권까지 부여하는 협정을 맺습니다


이로써 로마 대감독은 영원히 교황이라는 모든 교회를 통치하는
교회황제의 자리에 등극하게 됩니다. 또 샤를마뉴 대제에 와서 역시 같은 정치적 상황으로 교황 덕에 정권을 잡은 샤를마뉴도 로마대감독의 교황권 강화란 반대급부에 관한 협정까지 맺어 교황권을 강화시켜줍니다. (THE PAPACY :IDEA & ITS EXPONENTS.) 결국 역사적으로 보면 교황권은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포카스와 페핀황제가 내려준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내용은 약 200여년간의 걸친 역사를 약술한 것이며 참으로 중요한 교황권과 교황교리 탄생의 직접적 역사적 사실인데도 개신교회들 조차 잘 모르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것 외에도 교황교리가 초대교회의 산물이 아니라 로마 국교화를 전후해서 일어난 교회권력의 정치권력화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임이란 역사적 설명과 자료는 방대하고 충분하여 다 올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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