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사망, 또는 유아 사망 문제는 신학적으로 해석하기 어렵게 느껴져 왔다. 엄마 뱃속에서 죽은 아이 또는 어릴 때 죽은 아이들은 구원받았을까, 라는 문제 말이다. 이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서 죽는 아이가 우리 주위에 늘 있기 때문에 신학적 관심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영, 유아들이 천국에 갔을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문제를 로마가톨릭에서는 유아 세례로 해결하려 하였다. 유아 세례를 받으면 그 유아가 죽어도 원죄를 포함하여 모든 죄가 사하여졌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세례 받지 못한 채 뱃속에서 죽거나 유아 때 사망한 경우에는 이들이 어디로 갔을까 라는 의문이었다. 우선, 인간적으로 이들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 아이들은 당장 지옥에 간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지옥에 떨어져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원죄를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례 교리가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옥 변방에 위치한 유아 림보(limbus infantium)였다. 천국은 못가도 지옥의 고통은 면제하여 주는 곳에는 간다고 하였던 것이다. 성경에도 없는 개념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몇 주 전에 로마가톨릭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 유아 림보 개념을 철폐했다고 한다(관련기사=국제면). 이미 약 10년 전에 발행한 가톨릭교리문답에도(1994년) 이 개념을 싣지 않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적이지 않은 교리를 공식적으로 교황 스스로가 포기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이 문제에 우리는 유아 림보라는 이상한 교리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가톨릭교회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물론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뱃속의 아이까지도(“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원죄 아래(롬 5:12 참고)있어서, 구원받으려면 원죄 문제는 해결해야한다. 그러나 세례가 구원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세례 받지 않는다고 다 멸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칼빈, 기독교강요, 3.16.26). 그러므로 영아나 유아로 죽은 아이는 세례와 무관하게 구원받을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다(엡 2:8). 그런데, 세례와 마찬가지로 믿음이라는 이 기준 또한 영, 유아 사망에 적용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여기서 ‘믿음으로’라는 말은 의지와 같은 지적인 능력 혹은 의사 표현 능력을 전제한다고 할 때, 그 뱃속의 아이도 원칙적으로는 구원받으려면 죄 고백하고 주님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믿음을 고백할 수 없었던 영, 유아들은 지옥 불 곁에서 영원히 고통스럽게 있게 되는가? 믿음이 무언지도 모르는 어린 아기들이?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예외적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이 이러한 논증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아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되었는데, 예외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들어가게 했다는 사실에서 보게 된다(“너희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민 14:31). 그 이유는 아직 그 아이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신 1:39). 즉, 아이들은 참과 거짓을 판단할 지적인 능력이 없어서 그냥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천국에 가는 것으로 본다면, 뱃속의 아이를 포함한 어린 아이들은 천국에 간다는 말이다. 또 다른 말씀에서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된다고 하는 말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4; 막10:13-16)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믿음을 묻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들이 천국에 못 간다면 아이들을 안고 그 어린아이들을 천국에 들어가는 모델로 제시할 수는 없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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