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4년 말씀

신령한 목적을 품고 삽시다(창 01:26~2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8. 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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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세계를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동식물과 구분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동물과 외적으로 구별하는 생김새의 형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지는 자유의지와 책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차원의 형상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건강한 삶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사는 존재인가를 살피는 데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시다.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은 누구냐? 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질문과 답이 오늘의 말씀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가지는 존재로서의 독특성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향해 경배드리고 이웃을 향해서 책임 의식으로 살겠다는 목적의식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신령한 목적을 품고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향해서는 신령한 교제의 삶을 삽시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6절 말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여기 형상(形像)이란 단어를 잘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어떤 존재로 구성된 줄 아십니까? 흙이라는 물질과 하나님의 생기라는 비물질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사람의 영혼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사람됨을 구성하는 영적인 요소입니다. 이 생기를 통해서 사람은 영성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육체가 없는데도(04:24)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기능적 삶이 영적 삶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상을(צֶלֶם 첼렘).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육신의 눈으로 보는 코와 입, 귀 등 외형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靈的)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아담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때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로 부름을 받고 예수님을 통하여 속량(贖良)함을 입었습니다.

 

이 속량은 어떤 대가를 지급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면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신령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인 줄 알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알고 살면 복된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04:04) 하셨습니다. 현실론에서 좁게만 생각이 듭니까?

 

떡의 필요를 부인(否認)하신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다만 세상의 떡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밝혀줍니다.
12:16~20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이 부자는 곳간마다 곡식을 가득 쌓아 놓고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물질의 부유함으로 인하여 영혼의 행복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런 착각은 대부분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다우리의 주변을 보십시오많은 사람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정열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땀 흘려 일합니다. 때로는 겉 사람 꾸미기에 몰두합니다.

이런 일을 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소중한 영혼을 위해서 그다지 투자하지 않음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혼의 기쁨과 찬양을 잃고 가슴에는 불안과 초조가 가득한 삶을 살면 이런 삶을 누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갈 06:0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믿음의 가족 여러분, 나는 얼마만큼 신령한 삶을 위해 수고를 합니까? 말씀과 묵상과 기도로 주님과 얼마나 깊은 교제를 나누십니까?

영성 계발(啓發)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실 육체를 단련하는 일 이상으로 영혼을 일깨우는 품성 계발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사람은 영혼을 일깨우고 그 속에서 신령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결코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신령한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마음을 기울입시다.

 

 

2. 이웃에게 복음의 책임감으로 삽시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믿음의 꿈을 꾸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신령한 교제의 삶에 집중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 관계에 책임감을 지닌 존재로 살도록 자기 각오를 합시다.
사람은 땅에 충만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땅을 정복해서 가꾸어야 하는 자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다스린다는 단어는 본래 책임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도자가 되면 큰 책임이 따릅니다. 만일 책임감이 없습니까? 세상을 개간하고 다스리는 문화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른 생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지으신 것은 사람을 그만큼 책임감이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뜻입니다. 책임이 따르는 삶, 책임을 지는 삶을 사는 도덕성 있는 존재로 만든 것이 사람의 근본 목적입니다.

얼마나 책임 있게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느냐? 얼마나 의롭고 공평하고 진실하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도덕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간혹 성도들 자녀 가운데 교회 기물들을 함부로 다루고 파손시키는 분이 있습니다. 이 역시 책임 의식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분명히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만 있으면 매사에 기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사람을 가장 나쁘게 말할 때 책임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본래 도덕성과 책임성을 지닌 존재로 지어졌다는 뜻입니다.

만일 사람이 자기 본능을 따라 욕망 채우는 수준으로만 산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어긋나는 삶입니다. 사람은 일해야 할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02:07 절 중 생령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생령은 살아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 놓고 보면 사람과 동물과 식물 다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생물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경배의 삶을 사는 것이고 이웃을 향해서는 여러 일에 책임감으로 임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웃에 대한 책임이 무엇이어야 할까를 놓고 생각하다 평소에 좀 좋아하는 상표 풀무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의 창업자 원경선 옹()이 누구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각이 스치다 보니 이야기하는 겁니다.

 

풀무원은 먹거리 기업입니다. 그래서 풀무원의 홈페이지에서 총괄 CEO 인사말과 경영 정신을 한번 보았습니다.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풀무원 총괄 CEO, 이 효율입니다. 풀무원은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풀무원 농장 원경선 원장님의 이웃사랑, 생명 존중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 공익을 추구하는 영리 기업입니다.

기업 구성원이 행복하고, 고객에게 신뢰받는 기업, 협력기업과 동등한 지위에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지역사회에서도 사랑받는 기업, 그래서 주주에게 매력적인 기업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표이자 경영이념입니다.

기독교인 고 원경선 옹의 이런 정신이 진정 이웃에 대한 책임감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이웃에 대한 어떤 책임을 느낍니까? 사회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멸망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의 이웃에게 구원의 복음을 들고 찾아가는 일입니다.

 

롬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사람의 행복은 자기만 위해 살겠다는 욕망에 집착할수록 줄어듭니다. 반면 이웃을 위한 봉사의 자리로 나아갈 때 행복의 가치는 더욱 돋보입니다. 예수님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다듬어 가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제가 성경을 읽겠습니다.

 

눅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좌우명과 목적은 제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를 위하여 살고, 어떤 사람은 이념을 위하여 삽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도록 내게 허락하신 이웃을 책임감 있게 섬기며 사는 일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각오를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이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롬 14:0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링컨 십계명을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과 삶 이웃에 대한 삶을 아주 잘 표현한 글이기 제가 소개합니다.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기도할 것이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나는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이다.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만 영광을 올려드릴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고 우월하다고 믿는다.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성공의 삶을 사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신령한 교제의 삶과 이웃을 향한 복음의 책임감을 감당하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