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4년 말씀

이제 걱정도 염려도 하지 맙시다(눅 12:22~3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6. 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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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 대학 시립학과 심리학 팀의 염려에 대한 분석과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의 40%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염려한다고 합니다.

즉 공연한 걱정을 한다는 뜻입니다.  30%는 과거에 있던 일로 인해서 염려와 딜레마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역시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리고 12%는 남의 불행한 일이 혹 나의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인데 이 역시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10%는 병에 대한 염려입니다.

혹 내가 간암이나 각종 질병에 걸리지 아니할까 하는 염려로서 이 역시 신경과민에 속한 일입니다. 정작 8%만이 염려할 문제라고 합니다.

 8%도 머리를 싸매고 염려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염려는 돌아보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국 시카고의 한 의사가 개에게 특별한 시험을 하였습니다. 걱정과 염려와 괴로움이 될 만한 일을 직접 가해 보았더니 위액이 과다하게 분비되거나 소화 기능이 저하되어 위궤양에 걸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물론 개는 노후의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도 이웃의 다른 새보다 더 많은 둥지를 갖기 위해 염려하지 않습니다산속의 여우가 굴에 살지만 자기의 굴이 불안하다고 비상시에 대비한 굴을 하나 더 가지지 않습니다

 

다람쥐도 겨울나기 위해 도토리를 준비하나 이년 치 먹을 것 준비하지 않았다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세계는 이와는 반대입니다.

걱정해야 할 것은 걱정하지 않고 걱정 안 하여야 할 것을 매일 매일 걱정하며 삽니다. 그러니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이제 걱정도 염려도 하지 맙시다로 정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는 복된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께서 의식주 문제로 염려에 빠지지 말라 하십니다.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세상 사람은 물질이 삶의 최고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변에 모여든 무리에게 어리석은 한 부자의 삶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삶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다며 장래의 계획을 세운 부자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말씀의 대상을 무리에서 열두 제자로 바로 전환하셨습니다. 그리고 들려준 말씀이 의식주에 대한 염려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은 물질의 조건을 확보하여야 안전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당연히 물질은 기본이고 필수입니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염려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세상 사람의 살아가는 삶의 수단과 방식이 물질입니다. 이것 때문에 싸움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물질을 축적하려 함으로써 갈등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이 물질 때문에 갈등이 증폭하고 공동체에도 위기가 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이 물질을 완전히 버리고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 물질은 삶의 수단으로서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질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와 물질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없는 물질 관계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물질 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은 세상 조건을 다 내려놓고 주님을 따랐음을 잘 아십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의식주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나 오늘의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살이를 경험하고 나서 말하기를, 이 세상은 고해(苦海), 인생은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생살이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100년 안팎의 짧은 삶을 살면서도 광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고난을 쉴 새 없이 만납니다.

삶의 위험은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까지는 일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세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관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공동번역 예레미야 애가 03:15~16, 19절에 쓴 풀만 먹이시고 소태즙만 마시게 하셨다. 16 주께서 돌멩이로 내 이를 부수시고 나를 땅에다 짓밟으시니 쫓기는 이 처참한 신세 생각만 해도 소태를 먹은 듯 독약을 마신 듯합니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현실이 쑥과 담즙처럼 쓰다는 말입니다. 행복보다 쓴잔을 마시며 사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이 근심과 걱정과 염려거리를 안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문명의 발달로 일상의 편리함이 넘칩니다철없는 세상에 철없는 사람이 철을 구분하지 않고 물품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입니까? 온갖 시름이 사라질만한 정도의 환경이니 매우 행복할 것 같습니다.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2. 주님께서 의식주보다 믿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 하십니다.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예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목숨이나 음식, 몸이나 의복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아십니다. 목숨이 중요하기에 음식을 주시고 몸이 중요하기에 의복도 주십니다.

따라서 23절 말씀은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본질과 비본질의 가치를 혼동하여 본질 아닌 음식을 위하여 목숨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본질 아닌 의복을 위하여 중요한 몸을 하찮게 여기면 가치관이 뒤바뀐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근심과 염려에 빠지는 것은 비본질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근심과 걱정과 염려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 한숨짓는 사람 모두가 정상입니다.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뉴스에서 들을 수 있는 소식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다 여러분의 가족과 일가친척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염려 없이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이 없습니까? 저에게도 근심, 염려,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은 불안한 환경에 살고 있기에 모두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사에도 그동안 별일 없으시죠? 조심하세요. 살펴 가세요. 라고 하는 것이 모두 애정 어린 염려의 표현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를 안보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항상 약한 자기만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염려가 생기고 근심과 걱정이 엄습해 옵니다. 생각의 기준이 나로부터 시작하면 사망이 옵니다.

 

고후 07:10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도 의지하지 말고 세상 그 어떠한 것도 의지하지 말라. 무엇보다 생명이 귀하다.

목숨(ψυχή 프쉬케)이 음식보다 중하고. 이 단어는 육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명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목숨과 음식 영혼과 음식 어느 것이 더 귀합니까?

 

음식은 좀 홀대해도 되나 목숨을 홀대해서 안 됩니다. 내 목숨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 즉시 돌아서야 합니다. 내 목숨, 내 영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 믿어지면 모든 염려와 근심을 그분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삶의 고민거리도 해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일  0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세상은 내 눈으로 둘러볼 수 있는 주변과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 감각 등을 말합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 주변과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어떻습니까? 근심하지 않을 만한 좋은 뉴스거리입니까? 아닙니다. 온통 걱정거리뿐입니다.

주변의 이웃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 우리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등 모두가 경계해야 할 자들입니다.

 

시 146:03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3. 주님께서 그의 나를 구하라 하십니다.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를 구하라. 사람의 일차 관심은 무엇보다 의식주(衣食住)입니다. 이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06:11) 하셨습니다. 우리도 일용할 양식 구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의식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이 나라는(βασιλεία, 바실레이아)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지 말라는 금지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적극적 행위로 물질보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을 쌓는 일보다 영적 복을 구하는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의식주에 관한 것들을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보다 영적인 일이 상위 개념입니다 물질에 비해 상위 개념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의식주에 관한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 37:0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못한 사람은 이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물질에 몸과 마음이 집착된 사람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이 남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근심과 염려가 깊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걱정에 시달립니다.

 

왜 이렇게 시달려야 합니까? 하나님이 없는 불신앙의 덫에 걸려 물질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 사실 아시지요?

근심과 걱정은 마귀가 주는 선물이고 평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말입니다. 의식주에 마음 빼앗기면 주님을 모실 공간이 없습니다. 찬양과 기도와 신령한 은혜의 창문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으로 오는 두려움과 염려는 절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절망의 종착지는 죽음입니다. 결국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입니다.

성도 여러분, 계속 염려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외로움에 잡혀 있습니까? 눈물로 한숨지으며 괴로워합니까? 지금이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갈 때인 줄 깨닫기를 바랍니다.

 

벧전 05:0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반면 주위 사람이 우리를 보고 당신은 버림받았다. 망했다. 실패했다고 해도 주님의 손에 붙들리면 그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할 때 다가오는 근심과 염려를 오히려 걱정하십시오. 자칫 절망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지금 근심과 염려의 굴레에서 나오십시오. 영혼을 소생시키는 주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이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사 55:0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0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도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로 염려하십니까? 가정 문제입니까? 아니면 신앙 문제입니까? 진로 문제입니까? 자녀 문제입니까? 사업 문제입니까?

걱정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질없는 생각과 헛된 욕심을 십자가에 과감히 못 박으십시오.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그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과 독일군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총칼이나 폭탄에 맞아 전사한 미국 군인이 약 35만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나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로 인해 심장마비나 다른 병으로 죽은 사람은 일백만 명 이상이었다고 한 미국 신문이 보도하였습니다.

이처럼 근심이나 걱정 그리고 염려는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고난과 염려로 고민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08:28)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풍랑이는 바다에서 방향 잃은 난파선과 같은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더욱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신앙 초점이 어디를 향합니까? 자기만 보지 말고, 세상만 보지 말고 위에 계신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바라보십시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두 번이나 낙방하고 다시 도전해도 불합격될 때, 사기를 당하여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날려 버렸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걸렸을 때, 순간의 욕망에 끌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런저런 사연으로 명예에 금이 갔을 때, 그토록 믿은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하나님께로 나오십시오. 그 나라를 위해 에너지를 드리십시오.

 

빌 04:0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