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성탄절

[성탄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눅 01:26~4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12. 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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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끔 이웃의 생일 축하회에 초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껏 축하합니다. 흔히 갖는 생일 축하란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서 한해 한해 무사히 건강하게 성장하였음을 기뻐하면서 축하하는 일입니다.

또 위대한 성인의 생일을 기리고 기념하는 것도 한 생명이 태어나서 위대한 업적을 남겨 놓았기에 그의 생애가 시작된 날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탄은 예수님의 단순한 생일 축하가 아닙니다. 탄생이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매스의(mass) 두 말이 합하여 된 말로서 매스란 예배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가톨릭에서 예배를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이때 미사와 매스는 같은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2천 년 전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분이 태어나셨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단순한 나심의 사건에만 연결 짓는다면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성자로 모시고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 될지언정 그가 예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배의 근거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Incarnation) 주님의 구속사에 있습니다. 근래에는 사월 초파일을 석탄일이라 하여 옛날 교회가 성탄을 축하했던 것처럼 요란스럽게 축하합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탄생은 그저 한 생명의 출생에 불과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성육신인 신이 인간이 되는 사건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특별한 역사의 사건입니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축하로 그쳐서는 안 되고 항상 그 의미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쓸 때는 어떤 유명 인물의 자서전 쓰듯 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밝히려고 쓴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탄생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셨습니다.

 

눅 0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기를 가리켜 비천한 여종이라 하였습니다. 겸손의 말로도 이해되지만 별로 특출한 것이 없는 한 시골 처녀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왕족이나 귀족 여인의 몸을 빌려 오시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시골 처녀의 몸을 통하여 오셨습니다. 보통 어떤 인물의 전기를 쓸 때는 그 생애를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기록하나 예수님의 경우는 천하게 태어난 그대로를 기록합니다.

마리아는 한 평범한 시골 처녀지만 그에게는 겸손과 순종의 마음이 있었고 또 놀라운 인내력도 있었습니다. 정혼 한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한 말을 살펴봅시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합니다. 34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다시 천사가 말합니다. 성령님의 특별하신 능력이 네게 임하심으로 될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게 될 것이다(35). 이에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38). 이런 고백은 마리아에게는 대단히 무거운 십자가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면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을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약혼자와의 파혼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 사회에서 더는 발붙일 곳도 없는 치욕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고통의 십자가를 각오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를 수락합니다. 이로 인해 마리아의 영혼에 신령한 기쁨이 찾아오면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당시 관습으로는 저주받은 여자일 수밖에 없는 마리아가 찬양을 통해 그 십자가를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야말로 가장 복이 있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은 놀라운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무거운 십자가일지라도 순종하는 자에게 오히려 복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평범한 처녀이지만 놀라운 인내와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리아의 고난의 길은 이제부터 계속됩니다.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하려고 예수님을 데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을 때 시므온이란 경건한 분이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0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 마리아의 가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칼로 찌르는 것보다 아픈 고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의 상처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치료되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이루어진 죄악을 해결하려고 오신 예수님은 순종할 줄 아는 여자 마리아를 통해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2.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눅 0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동들은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갑자기 밝은 빛이 그들을 두루 비추면서 천사가 나타나 소식을 전하자 허다한 천군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경배를 올립니다. 당시 유대인은 누구나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천대받는 민중이 더욱 간절하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기다려 온 메시아의 탄생 소식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누가 먼저 들어야 합니까? 밤낮으로 성경을 연구하며 지키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율법 연구와는 거리가 먼 목동들이 천사를 통하여 직접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들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당시 목자의 생활 형편이 어떤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추측하건대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한 목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에 쓰이는 양을 공급하는 목자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착취와 음모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 제사에 대해서도 은혜를 진작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성전 제사에 사용할 양을 공급하는 자들이지만 제사장들 농간으로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싼값으로 양 떼를 공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은 헐값에 양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기는 그 심사를 알았기에 착취와 분노와 한이 더욱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딱하고 가난하며 억압을 당하는 백성들의 표본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누구보다도 이런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습 0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지라.

 

이런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특히 가난한 백성들 가운데 오시어 그들을 보호하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3.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도 생각해 봅시다.

 

마 02:0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태가 전하는 동방박사들 이야기는 독자(讀者)가 유대인입니다. 마태가 왜 이 기사를 다룹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의 역사는 유대인만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 모든 민족까지 포함된 역사임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을 리는 없는 사람들입니다. 점성술을 통해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왕으로 나신 아기를 찾는 길을 떠나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러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 이들은 남들이 다 자는 밤중에 일어나 걸었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지켜보며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두운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한 별을 보고 오랜 점성술의 결과 역사의 주인공이 탄생할 징조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마침내 세 박사가 이 별의 인도를 따라 결단력과 용기를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들의 행동이 어리석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다소 불확실한 미래임에도 떠났습니다. 확신이 왔기에 한 위대한 사람의 나심을 찾아 떠났습니다. 때로는 순례길에서의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주저함과 혹은 되돌아갈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인내함으로 극복하여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확신과 기쁨으로 각각 자기들 나라도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놀라운 통찰력과 결단력이 이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역사의 의미를 통찰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메시아인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오셨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 속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비천한 자들 속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들 속에 오셨습니다. 메시아를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이방인들 속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리아의 노래에 그 이유가 들어있습니다.

 

눅 0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 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