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3년 말씀

엘리사를 섬기는 수넴 여자(왕하 04:08~3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10.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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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 전국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는 차나 비행기가 없습니다. 선지자 사역을 위하여 신학교마다 순행하는 일이나 왕궁을 출입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이라는 마을에 갔습니다. 수넴은 굴곡(屈曲)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역 이름부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굴곡이 많은 땅, 그만큼 그 지역 사람의 삶이 힘들 것이라 예상됩니다. 열왕기하 04장에는 수넴에 사는 한 여자가 수넴에 들린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수넴은 술람이라는 곳과 같은 지역입니다. 엘리사가 갈멜산에서 길갈을 순방할 때 꼭 들러서 가는 곳이 수넴 마을입니다. 갈멜에서 수넴을 지나 갈릴리에 있는 여러 성읍을 방문하는 일이 엘리사에게는 일상 사역입니다(02:25).

열왕기하에 기록된 엘리사의 대부분 활동 지역이 갈멜 남쪽입니다. 따라서 수넴은 엘리사의 주요한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이 수넴을 지날 때마다 한 여자가 나와서 정성껏 대접합니다.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최고의 대접을 합니다. 이 귀한 섬김을 오늘 복을받는교회 성도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엘리사를 섬기는 수넴 여자로 정했습니다.

 

 

1. 수넴 여자는 엘리사를 위하여 전용 숙소를 만들었습니다.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먼저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뉘앙스가 다른 용어를 저의 관점에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20201114일 나는 현숙한 여자입니다(31:10~31). 라는 설교에서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내용을 다시 복기하겠습니다.

08절에 나오는 여인이라는 단어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여인 여자 여성 세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첫째 여성(女性)부터 봅시다. 여성이란 인간을 성에 따라 나눌 때 남성에 대응하는 사회학 용어입니다. 성 정체성과 연관해서 남녀를 구분할 때 표현합니다.

 

둘째 여인(女人)입니다. 이 단어는 여성에 대한 남성과 여자에 대해 남자처럼 대응하는 남인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인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자 즉 여성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의미입니다. 사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은 한 인격체로서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성차별에서 좀 더 존중하자는 의미로 나온 단어가 여인입니다. 여인이라는 어감은 원숙한 나이에 접어든 것 같은 좀 품격있는 단어로 느껴집니다.

 

셋째 여자(女子)입니다. 이 단어는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사회학 관점에서 여성 여인 여자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 단어가 사회학에서 구분하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쓰일 때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면 화장실을 표기할 때 여자 화장실 하지 여성 화장실 안 합니다. 반면 사우나실에서 여자의 수면 공간을 표시할 때는 여자 전용 안 하고 여성 전용이라 합니다.

 

성경도 조금 높이겠다는 의미로 여인 아니면 좀 낮추는 듯한 의미로 여자 이렇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에는 하와를 여자(01:27)로 표기하였습니다.

저는 여인이나 여성 이런 단어보다 여자라는 단어로 통칭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에도 엘리사를 섬기는 수넴 여자. 라고 여인이 아닌 여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수넴 여자를 수식하는 용어가 무엇입니까? 08절을 보시면 귀한 입니다. 귀하다는(גָּדֹל 가돌) 뜻은 위대한, 존귀한, ()한 이런 의미입니다.

이 수넴 여자가 엘리사가 들릴 때마다 믿음으로 접대합니다. 남편에게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קָדוֹשׁ 카도쉬)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엘리사의 외모 대머리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신령한 분별력과 하나님에 대한 예의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큰 열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03:05). 그 섬김이 어느 정도입니까? 남편에게 부탁하여 옥상에 엘리사를 위해 방을 만든 일입니다.

 

본체와는 상관없이 밖으로 출입할 수 있는 독방입니다. 그 안에는 침상 책상 의자 촛대 등의 비품을 들였습니다. 침실뿐만 아니라 휴식과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봉사는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또 하나의 사역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사랑도 주님께서 잊지 않으십니다. 하물며 수넴 여자의 이런 섬김과 봉사는 복 받을 일입니다.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은 분명 복 받을 만한 일입니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 엘리사는 수넴 여자의 섬김을 최고의 복으로 갚아줍니다.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도 수넴 여자의 계속되는 섬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한 대가를 해 주어야 할 정도로 귀한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비서(祕書) 게하시를 통해 그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청탁할 일이라도 도와주겠다는 엘리사의 배려입니다.

 

그러나 이 수넴 여자는 엘리사를 대접한 것은 무슨 보답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님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기쁨으로 섬긴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엘리사가 종에게 사정을 살피라고 합니다.

 

게하시가 자세히 알아보니 그 귀한 믿음의 사람 집에 자식이 없습니다. 결혼한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복에서 끊어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불임의 원인은 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여자에게 원인이 있다는 편견을 가졌습니다.

 

이런 단정으로 인해 많은 여자가 수치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넴 여자 부부도 아이를 갖기 위하여 많이 노력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만 한계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말을 듣고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엘리사의 말을 헛된 희망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저 말치레로 받아들입니다. 아들 낳는 일만큼은 희망을 접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면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7:16). 그때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결국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아보셔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21:02).

사람은 불가능하게 여겨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풀리고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세상 환경은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해결됩니다.

사도 바울도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04:13). 수넴 여자는 세상 조건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 은혜로 꿈 같은 일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기적이라고 합니다.

 

수넴 여자는 인생 최대의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잘 접대한 일은 하나님을 섬긴 것과 같습니다.

조건 없는 섬김과 반대급부 바라지 않는 섬김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됩니다(10:04). 수넴 여자가 어느 정도의 성의로 엘리사를 섬겼는지 그 모습을 보겠습니다.

 

엘리사를 간권(懇勸)하여(08). 당시 사회에서 이런 섬김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조롱하며 함부로 대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 02:23). 마침내 수넴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수넴 여자가 엘리사를 잘 접대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을 일입니다. 이런 섬김은 아들을 받기에 합당한 일입니다. 바울은 이런 섬김의 사람을 알아주라고 했습니다(고전 16:18).

 

 

3. 수넴 여자는 죽은 아들을 엘리사의 침상에 눕혔습니다.

 

21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대로 수넴 여자가 이듬해 아들을 낳았습니다(17). 그런데 그 아들이 자라 걸을 수 있게 되자 아버지가 일하는 농장에 갔습니다. 수넴 지방은 옥수수 재배로 유명한 곳입니다. 아마 옥수수 따는 곳에 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이 아이가 아이구 머리야, 아이구 머리야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일사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일사병은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있는 병입니다(121:06, 49:10).

 

추수 때는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이므로 일사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아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사환에게 엄마에게 데려다주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기면 곧 회복될 줄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엄마의 무릎 위에서 한나절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죽은 아들을 자기의 방이 아닌 엘리야의 방 침상에 눕혀 놓고 나왔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문을 꼭 닫아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주세요. 사환 한 명을 데리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입니다(22~23).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오늘은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엘리사에게 다녀오려고 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초하루(月朔)와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휴일입니다(삼상 20:05, 01:13, 08:05). 엘리사도 이런 절기나 안식일에만 상담자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남편의 질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가도 엘리사를 만나기 힘들지 않겠느냐? 그렇게 급히 선지자를 만나러 갈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느냐? 그러자 수넴 여자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평안입니다(23).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수넴 여자는 아이가 죽은 것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근심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엘리사가 오면 아이가 살아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꼭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대부분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으니 이제는 불행이 없는 생활을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끊임없는 시련이 옵니다. 질병도 오고 고통도 옵니다. 실패의 쓰라린 경험도 만납니다.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시련과 연단도 경험합니다.

교회를 향하여 흔들어 대는 사탄의 공격 앞에서 때로는 교회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넘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만나는 것이 복을받는교회 가족의 현실임을 기억하십시오.

 

수넴 여자는 갈멜산에 거하는 엘리사를 찾아가서 아들이 죽었다고 전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호소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 말합니다. 내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죽은 아들의 얼굴에 두라는 명령입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의 말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당신이 직접 가셔야 합니다. 라고 강하게 메어 달립니다. 간절한 청에 엘리사가 직접 따라나섰습니다(30).

 

수넴 여자의 죽은 아들에게 엘리사가 찾아갔습니다. 엘리사의 방법으로 치료하니 서서히 체온이 돌아왔습니다. 재채기를 일곱 번 한 후 살아났습니다(34~35). 할렐루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시련이 닥쳐올 때 믿음은 흔들리지 마십시오. 수넴 여자처럼 하나님께 메어 달리십시오.

하나님을 붙잡으면 풀립니다. 수넴 여자가 끝까지 붙든 것은 믿음의 끈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풀린다는 믿음의 끈을 잘 붙들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헐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넴 마을, 산에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이 땅을 푸르게 하는 시골에서 영육 간에 넉넉한 생활을 누리는 이 여자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평범한 시골 아낙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 죽었으니 이게 예사로운 일입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남편을 부르고 울고불고 난리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드라마 촬영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믿음의 시간표를 따라 움직입니다.

 

죽은 아들을 조용히 눕혀 놓고 엘리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종 엘리사 선지자 한 분만 붙들고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 정말 본받을 만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고통스러운 일, 세 가지를 만납니다.

죽음과 질병과 가난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 가지 절망 요소도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담대한 믿음 하나로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을 꼭 기억하십시오.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도 인생의 가뭄과 폭풍은 얼마든지 찾아옵니다. 말씀대로 산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이사야가 선지자가 죽는다고 통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히스기야(유다 왕국 13)는 주눅 들지 않고 면벽(面壁) 기도로 하나님과 담판을 지어 15년 삶을 연장하였습니다(38:01~05).

사도 바울이 성령님 감동을 입어 빌립보로 갔지만 결과는 감옥이었습니다(16:23~32). 그러나 다음 순서에서 기도와 찬양으로 문제를 풀어내고 빌립보교회까지 세웠습니다.

 

신앙 간증자가 되어 오늘 우리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믿음의 비법을 보게 됩니다. 어떤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맞서면 풀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넴 여자와 그 남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에도 저자는 그 이름을 감추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을 사람 앞에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겸손히 숨은 봉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