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복이 옵니다(시 84:05~0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0. 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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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아시지요?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시작해 서울특별시 서초구까지 연결된 대한민국 고속국도 제1호선 말입니다.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에 완공된 길이 417.4㎞, 폭 22.4m 왕복 4~8차선 도로입니다.

건설비는 384억 5,600만 원, 용지비 20억 100만 원, 부대비 25억 1,600만 원 등 총 429억 7,300만 원이 들었습니다. 국토의 대동맥이라 불리는 이 도로는 2002년 5월 1일 변경된 노선체계에 따라 기점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구서 I C)이고 종점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입니다.

이 도로를 건설한 배경이 있습니다. 1964년 12월 파독(派獨) 광부들과 간호사들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의 용단 때문입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본-쾰른 간 왕복 40㎞ 아우토반을 주행한 후 독일 에르하르트 총리가 고속도로 건설이 경제부흥에 미치는 놀라운 효과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재정 규모나 기술 보유 장비를 보면 고속도로 건설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독일 총리로부터 설명을 들은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추진하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이어 1967년 5월 2일 제6대 대통령선거 기자회견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천, 강릉, 부산, 목포 간 고속도로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 대부분이 고속도로 필요는 인정하면서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속도 조절론을 내세웠습니다. 결국 이 도로가 건설됨으로 인해 전국이 하루 생활권 시대로 열렸고 경제발전 및 국민 의식 평준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고속도로는 꼭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국내에 살던 외국에 살던 큰 절기를 맞으면 시온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시온산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보다 복된 일이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전국 어디서든 시온을 향하는 대로(大路) 닦는 일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최고의 복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05절 보십시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안내합니다.이 말씀 따라 시편 가운데 진주라는 별명이 붙은 84편을 통해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복이 옵니다」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시온이란 단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0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교회에 어느 정도 다니신 분은 시온이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흔히 듣는 시온 찬양대, 구호 기관인 시온의 집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시온성과 같은 교회(210),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550)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온이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지만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릅니다.

명칭은 들어 보았지만 그 장소를 잘 모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지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구약시대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단어부터 시작해서 신령한 적용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시온(צִּיוֹן). 시온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178번 정도 나옵니다. 성경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시온은 범위가 확대되고 신령한 의미도 추가되었습니다.

 

시온에 대한 처음 언급은 삼하 05:07입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여기에서 시온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에 살던 고대 가나안 원주민 여부스족의 요새(要塞)입니다. 예루살렘 지역의 여러 언덕 중 하나로 해발 765m의 작은 산입니다.

 

또 시온은 모리아와 같은 지명입니다. 모리아[מוריּה]는 보다, 선택하다 등의 의미가 있는 ראה [라아흐]와 여호와의 줄임말 יהּ[야]의 합성어입니다.

이 모리아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을 따라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린 곳이며(창 22:01~13) 그 뜻은 여호와께서 보시고 선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 모리아산 기슭에 있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성전을 건축하기로 이미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모리아가 시온산이고 동시에 성전산입니다.

예루살렘은 B.C. 10세기경 다윗이 정복한 후 이스라엘 소유가 되었고 거기에 왕궁이 세워짐으로 이스라엘 왕국의 권좌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남서쪽에 자리를 잡은 이 산은 요새라는 의미가 있고 다윗 때에 예루살렘은 다윗의 성으로 불리었습니다(왕상 11:27, 43, 15:24).

이 시온에는 다윗을 비롯한 역대 이스라엘 왕들의 무덤이 있고 기독교 관련 유적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산 이름이었으나 나중에는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시온은 유대인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뜻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시온을 인명이나 지명으로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로,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로, 안식처로, 피난처로 비유합니다.

 

시온은 감동과 은혜의 장소로서 이스라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시온은 장소에 그치지 않고 의인화(擬人化)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핵심 단어가 무엇입니까? 시온과 그 정신을 나타내는 시오니즘(Zionism)입니다. 이 시오니즘이 흩어진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 시오니즘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동시에 지정학 차원에서 많은 분쟁 중심지도 되었습니다.

 

 

2. 시온의 대로가 무엇입니까?

 

0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나아가는 길 닦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온의 대로는 오랜 세월을 걸쳐 자연으로 다져진 길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정성을 들여 만든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히브리어 원문에는 메실라입니다(מְסִלָּה). 시온이란 말은 없고 쌓아 올린 길의 의미만 나옵니다.

이 대로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이 아니라 쌓아 올린 길이기 때문에 저자가 의미상 의역(意譯)으로 시온을 첨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시온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은 시온을 향하여 올라가는 도로를 닦았습니다. 교통 편리를 위하여 곧고 넓고 평평하게 닦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기후 조건과 지형은 성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메마르고 가파른 모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외국서 오는 남방 길이 더욱 그렇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온은 불볕더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를 닦을 때는 샘의 근원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형상 샘을 찾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샘을 찾았다고 해도 그 샘에 물이 항상 철철 흘러넘치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가뭄이 길게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리가 많이 지나는 길목의 샘은 물의 사용량이 많아서 샘의 근원이 마를 때도 있습니다. 목마름으로 인해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샘물의 양이 충분하고 곧고 넓고 평탄한 길이 펼쳐지면 이를 시온의 대로라 부릅니다. 때로는 눈물 골짜기로 표현합니다(06).

이스라엘 민족은 특별히 유월절을 앞두고는 각국과 전국에서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시편을 읽으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 붙은 곳이 15편 있습니다.

 

즐거움으로 와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05절을 잘 눈여겨보십시오. 주께 힘을 얻는 자의 마음에는 시온을 향한 대로 천국을 향한 대로가 온전히 그리고 아름답게 열립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대로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막힘이 없는 상태, 언제든지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관계를 말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찬양이 막힘이 없고, 기도가 막힘이 없고, 말씀이 막힘이 없어서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큰길이 열리면 그 성도는 행복합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의 마음가짐은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을 향하여 그 마음이 넓어졌다는 말입니다.

고속도로에 많은 자동차가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은혜받은 마음은 많은 사람의 말(言)이 지나가도 걸림돌 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계속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시온의 대로가 열리듯이 우리의 마음도 은혜를 받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넓어져야 합니다. 이후부터 모든 사람에 대한 관용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기를 원합니까? 먼저 시온의 대로부터 잘 열어야 합니다. 계속 좁은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몇 날이 못 되어 걸림돌을 만나고 좌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교회 공동체에 있는 분들 모두가 귀합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그 심성에서 나오는 생각과 견해에 혹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여간 넓은 마음이 아니고는 복잡한 문제도 발생합니다.

 

고후 0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3.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예루살렘의 복을 봅니다.

 

0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세계 역사에서 외세(外勢)의 침략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자주 외부의 침략을 받고 포로 생활도 하다 보니 특별한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그곳을 평생 떠나지 않고 지내다 예루살렘에서 죽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불행을 만나게 된 북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앗수르에 멸망하였고(B.C. 721) 유다 왕국도 바벨론에 멸망하였습니다(B.C. 586).

똑똑한 사람은 모두 포로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와 예배하는 일,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상을 섬긴 결과로 포로 신세가 되었습니다.

복을 받는 일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복 중의 복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 복에서 그만 탈락하고 만 셈입니다.

 

교회 나오신 분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전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이 전하는 복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마지막 날까지 빌리러 안 가고 혹 여유가 있어 빌려주면 좋고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자녀도 모두 성공하여 떵떵거리면 큰 복을 받은 겁니까?

이 복을 받으려고 예배에 안 빠지고 열심히 기도합니까? 예 이것도 복입니다. 이런 복 사모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복의 지경을 좀 더 넓혀봅시다.

우리가 받아야 할 복 중의 복이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먼저 믿음의 모델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 복이 무엇인지 성경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창 12:0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בְּרָכָה 베라카) 될지라. 개역판에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로 나옵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은 복의 근원으로 암송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이보다는 너는 복이 될지라는 뜻이 더 정확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창 03:15) 메시아가 장차 나게 된다는 복입니다. 이 복 대단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자체가 복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이 이 부분입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복 자체가 되어 복을 나누어 주는 데 있습니다.

 

복이(אֶשֶׁר 에세르) 있나이다. 이 부분이 말하는 복은 우리가 일반으로 구하는 세상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 생활로 인한 행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복이란 첫째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풀려나는 일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교회에서 마음껏 믿음 생활하며 하나님의 신령한 일에 봉사하는 일입니다. 이 복을 잘 설명한 구절이 10절입니다.

 

10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까?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마음을 계속 흔듭니까?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수의 기쁨으로 꼭 채워야 합니다.

은혜의 기쁨을 회복하는 일에 걸림돌이 있습니까? 다윗과 같이 하나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해 주십시오(시 51:10) 하고 기도할 때 복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시 128:0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마음에 이런 시온의 대로가 잘 열려 있으면 성경이 약속한 복을 받습니다. 이 복은 신령한 원리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받을 복은 시온의 대로가 잘 열려 있느냐 여부로 결정됩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보는 말씀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 자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자체를 복으로 알았습니다. 새번역은 시온의 대로를 시온의 순례길로 번역하였습니다. 아주 적절한 번역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잘 열린 사람이 받는 복은 세상 물질의 복이 아닙니다. 시온의 대로를 거쳐 하나님의 교회에서 누리는 신령한 은혜의 복입니다.

신령한 복은 직분과 봉사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선 받아야 할 복이 무엇입니까? 직분의 가치를 회복하고 신령한 일에 쓰임을 받는 일입니다.

 

시온의 대로를 열어가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아니고는 열지 못합니다. 시온의 대로를 잘 열어가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02). 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열 수 있습니다. 17세기 청교도 존 번연(John Bunyan, 1628.11.28.~1688.8.31.)은 시온의 대로를 열어서 천국까지 가는 길을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 했습니다. 역경의 여정이라는 뜻입니다.

이 길을 잘 열어가는 분이 우리 교회 유경순 집사님입니다. 장유에서 교회까지 오는 일을 감당하기 힘든데도 즐거움으로 옵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만한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