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하여(롬 14:07~0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9. 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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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만난 환경은 웬만한 일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해결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한때는 중요한 안부를 전하기 위해 우체국에 가서 전보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상대방과 통화를 위해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이제 박물관의 유물처럼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메신저를 확인하고 이모티콘을 통해 감정도 간단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포털사이트에 뜬 오늘의 뉴스를 훑어보고, 필요한 물품은 클릭 몇 번만 하면 구매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정말 좋은 세상이죠.

 

이런 편리한 환경 속에서 무엇보다 나는 왜 사는가?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아직도 자기의 존재 이유를 세우지 못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정립(正立)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하여」로 정했습니다.

 

 

1. 자기만을 위한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0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사람이 매우 비장한 각오로 일을 시작할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라는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결국 죽느냐? 사느냐입니다.

생사에 관한 여러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삶과 죽음에 관한 일을 신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자기의 목숨과 명예를 구걸하기 위해 사는 것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앞부분 01~06절에서 로마 교회 안에서 벌어진 음식 문제, 신앙과 관계되어 지키는 날짜 문제 등에 대하여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롬 14:0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먹고 마시는 모든 일에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감사하며 하라. 교회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에 대하여 자기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살아가는 원리는 불신자의 삶과는 반대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바(고전 06:19, 20) 되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 삶을 포기 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살 때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관은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여 이웃과 공유하는 데 있습니다.

 

각자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 은혜로 하나님 자녀 되었으니 이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의 의미를 찾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때가 언제쯤입니까? 여러분 현재가 제일 중요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나의 시간이고 나의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의 신분을 말할 때 어떻게 표현합니까? 먼저 본적과 현주소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이름 성별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표기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복지카드, 여권 등 나를 보장하는 신분증에 어떻게 기재되어 있습니까? 이름과 현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면허번호 등만 기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소유하신 신분증 보십시오. 본적이 안 나옵니다. 없는 게 아니라 생략하였습니다. 이유는 본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주소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신령한 주소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 안에 등재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자기만을 위한 삶을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을 위한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교회에 얼마나 다녔느냐는 연한이 중요합니까? 예, 중요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밖에서 나만을 위해 즐기던 삶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 살기도 힘들군 죽으면 망하리 0번지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을 벗어나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존재로 살아갑니다.

내게 교회에서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 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었기에 이제부터 자기만 위하여 살아온 삶을 아웃 시켜야 합니다.

 

 

2. 자기중심의 삶을 주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0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오늘 말씀 07~09절을 잘 보십시오. 위하여, 라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07절에 두 번 08절에 두 번 09절에 한 번입니다. 이는 신앙인이 무엇인가를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의 특징은 돈을 위하여, 권세를 위하여, 쾌락을 위하여, 부귀영화를 위하여, 또 다른 무엇인가를 위하여 자기의 일생을 투자합니다. 건강한 목적의식 없이 그저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또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확고히 정해야 합니다.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삶의 목적과 방향이 뚜렷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삶은 늘 불안정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나의 목적과 방향을 확고하게 세웠습니까?

 

08절에서 바울이 특별하게 비중을 두는 단어가 있습니다. 「위하여」 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라는 큰 목적을 따라서 모든 문제를 풀어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 모임이나 회식의 현장을 보면 서로 잔을 부딪치며 외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지요? 여당은 위하여, 야당은 위하야 구호입니다.

 

어떤 목적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이끌기 위해,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위하여,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모임의 분명한 목적이나 대상을 포함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망하든, 죽든, 어찌 되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삽니다. 이런 스타일은 먹고 쓰고 입는 향락이 목적입니다.

자기만 위해 사는 사람은 잠시의 성공은 누릴 수 있겠지만 신령한 성공, 영적 성공의 자리에 들지 못합니다. 참된 행복도 맛볼 수 없습니다.

자기만 위해 사는 사람은 이기심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사람을 가리켜 죄인이라고 합니다. 이 이기심이 바로 죄의 근원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 인본주의 삶을 살지라도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구축하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중심의 이기주의 발목에 사로잡혀 삽니다. 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삶의 축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에 걸림돌 요소가 무엇입니까?

죽지 않은 이기주의 욕심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남긴 성경 로마서를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살기 원하는 나에게 아직도 이기심이 있습니다. 이 이기심이 믿음과 충돌하기 때문에 정말 곤고합니다. 딱하다는 말이지요.

 

롬 0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무엇보다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의 스타일을 주님 중심으로 방향 설정하여야 합니다. 금붕어가 어항이 좁다고 이리저리 튀어 보지만 어항 속을 떠나면 그때는 죽고 맙니다. 물고기의 자유는 어항에 있을 때이지 밖이 아닙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자기중심의 삶을 깨뜨린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즐거움을 박탈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자기를 깨뜨리는 일에 주저하지 맙시다. 내 의가, 내 욕심이, 내 자존심이 내 우월감이 너무 강하면 주님을 위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3. 주님을 위하여, 라는 분명한 계획을 세웁시다.

 

0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신앙인은 자기만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신 사명 따라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피로 값 주고 사셨다 하셨으니 이제 내 삶은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값을 내어 주셨으므로 나는 하나님 영광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06:19, 20). 이미 우리는 주님에게 소유권이 이양된 성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나는 이제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라는 분명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성도들은 나는 주님께 속했다는 의식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 지셨음에 감격하였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생명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이제부터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합시다. 신령한 기준이 없이 살면 어느 순간에 믿음이 흔들려 공동체를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선순위를 잘 구분하여 살면 그 삶의 질이 현재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상처를 입고 화목이 깨어지는 일이 왜 생깁니까? 진리 문제입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열을 내고 싸워야 합니다. 그런 싸움은 해도 됩니다. 그러나 진리 문제가 아닌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일로 내 주장을 앞세워 싸우면 안 됩니다.

화목이 깨어지기 때문에 정말 안 됩니다.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건 하나하나마다 허락과 금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εις τουτο). 이 부분은 08절에 대한 확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나를 위해서이고 살아나심도 나를 위해서입니다. 09절 서두에 이를 위하여, 라는 전치사는 예수님의 속량(贖良) 목적이 의미하는 바를 말해줍니다. 이 부분을 우리 모두에게 적용해 봅시다.

예수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그 세운 계획을 따라 살라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이 형식이 아닌 진실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교회 안의 불신자에서 진실한 신자로 전환하라는 의미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비행을 하는 한 여객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이에 기장이 방송으로 소리칩니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의 엔진 중에 두 개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연기 때문에 조종실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승객들은 흥분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 승객 중에 한 사람이 소리칩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제 말을 들으세요. 지금부터 하나님께 고개 숙여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고개 숙이고 있는데 유독 한 남자만 모자를 쓴 체 그냥 서 있습니다. 목사님이 말합니다.

 

당신은 왜 그냥 서 있소? 저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교회에 한 번도 안 가 봤어요? 가봤지요. 그러면 교회에서 본 대로 하세요.

그러자 남자는 모자를 벗어들고 통로로 나오더니 헌금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본 것이 헌금을 걷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형식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의 주소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형식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분명히 달라져야 합니다. 먼저 믿음의 주소부터 바꾸고 예수님 안에 삽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삶의 우선순위를 신앙으로 배열하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주님을 위하여. 라는 순서로 말입니다. 이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내 삶의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고 그분만을 모시고 살아갈 때 신령한 세계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하늘나라요 죽어도 하늘나라입니다. 사람들이 행복은 말하지만 행복해지는 법은 잘 모릅니다. 왜 문제가 생기고 왜 불행이 옵니까?

주님을 위하여, 라는 대 주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마지막 날에 이렇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우리가 여러 불평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질이나 부가 없어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만족이 없고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해지는 것은 믿음의 기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를 크게 나타내고 인정받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명예와 돈과 인기를 구하려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위하여, 라는 삶이 중요합니다.

 

내촌감삼(日本 內村鑑三 1861.4.2.~1930.3.28.)의 묘비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라는 묘비명입니다.

그러면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하여 살고,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에 대한 삶의 방향을 결단합시다. 나만을 위하여 살아왔습니까? 지금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땅의 것을 위하여 삽니까? 하늘나라의 것을 위하여 삽니까?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