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산 소망을 품고 삽시다(벧전 01:03~0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8. 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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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23일 압록강 강변까지 진격했던 유엔군 소속 해병대 군인들이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은 전진보다 후퇴하는 작전이 제일 어렵습니다. 많은 군인이 포위 속에서 쫓기다가 희생당하였는데 피곤함에 지친 군인들이 잠깐 바위틈에 은신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 비참한 모습을 본 한 종군 기자가 미군 병사에게 물었습니다What can I do for you?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미군 해병대의 군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Give me tomorrow 내일을 주십시오우리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돈도 명예도 필요는 합니다.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내일입니다. 내게 내일을 주십시오. 미래를 주십시오. 소망을 주십시오. 이것이 그의 외침이었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사람은 아는 만큼 사는 게 아닙니다. 가진 만큼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바라는 만큼 삽니다. 얼마나 아느냐? 얼마나 가졌느냐에 행복이 걸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소망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됩니다어떤 소망을 품고 사느냐가 행복의 질을 결정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는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 산 소망을 안내합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하늘나라 소망을 여러분도 품고 살면 분명히 복이 임할 것입니다. 믿음의 앞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산 소망을 품고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산 소망을 품은 성도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0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현실 가치관에 있습니까? 그것이 물질입니까? 아니면 순간의 쾌락입니까? 이런 것보다 영생의 세계에 가치관을 두십시오.

03절을 보면 산 소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산 소망은 베드로 신학의 핵심 단어입니다. 베드로전서, 후서를 보면 베드로의 핵심 단어인 산 소망이 잘 새겨져 있습니다. 이 산 소망의 종착점이 영원한 세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육신은 세상 법칙을 적용받습니다. 반면 영혼은 신령한 법칙을 따라 살아갑니다. 믿음을 통하여 알게 된 산 소망은 영생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영원한 세계를 준비해 놓으셨다는 안내문입니다. 이 세계는 산 소망을 품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말로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생각으로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세계가 있는 줄로 깨달아지면 지금부터 들어갈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나중에, 차차, 이런 생각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히말라야 설산에 야명조(夜鳴鳥)라는 새가 살고 있습니다. 새 이름이 좀 재미있습니다. 밤에만 우는 새라는 의미에서 야명조라 부릅니다.

이 새가 밤이 되면 혹독한 추위로 인해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 하면서 울어댑니다그러다 날이 밝아 햇살이 비치면 밤새 얼었던 몸을 녹이면서 지난 밤의 일을 까맣게 잊고 종일 일도 하지 않고 열심히 놉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은 놀고 지낸 낮의 일을 후회하면서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 하며 추위에 떨며 또 웁니다. 이 야명조는 결심과 후회를 반복하면서 밤만 되면 추위에 떨며 웁니다.

 

사람은 곤경에 처하면, 이 상황만 극복되면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해결되면 이내 믿음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우리가 이 야명조와 같지 않습니까?

현재 일을 다음으로 미루는 누적 지수를 환산하면 인생의 절반 이상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같은 고통을 반복해서 겪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기력한 의지에 자기를 맡기기 때문입니다.

다음부터 잘해야지 하면서 현재 일을 내일로 미루는 행동은 히말라야 설산의 야명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살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 생활을 계속 미루는 습관입니까? 이번에는 아니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해 보겠다는 핑계 습관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고후 0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라는 말을 보십시오. 주목의 대상이 세상 물질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신령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세상에 속한 것을 잠깐으로 하늘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세상 것은 모두가 죄악의 요소입니까아닙니다.

잠깐 지나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혹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산 소망을 가진 성도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죄의 길을 차단하며 살아갑니다.

 

 

2. 산 소망을 품은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0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말세(καιρω εσχατω)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세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예수님의 재림(παρουσία) 때를 말합니다. 이때 성취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앞서 03절에서 말하는 산 소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그리스도인이 이미 향유하고 있는 구원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이렇게 산 소망을 품은 자는 마지막 그날뿐만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산 소망을 품은 자가 구원받는 확정 단서가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바울은 이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엡 02:0: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보호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군사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이미 이루어졌고 또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 계속 보호해(φρουρουμενους 프루루메누스) 주신다는 뜻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순례자로 살아가는 동안 사탄의 영향력을 막아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십니까? 이 보호는 구원의 완성 때까지 따릅니다.

 

오늘의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 일입니다. 동독의 한 공산당 교사가 담임하고 있던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에게 하나님은 없다고 해라.

선생님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한 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그러나 기독교인 가정에서 자라난 8살 난 소녀는 그 말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으로부터 몹시 야단을 맞는데도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노트에 5십 번 써 오너라. 그러나 그 학생은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이에 선생님이 분이 나서 부들부들 떨며 말합니다. 집에 가서 내일까지 하나님은 없다는 말을 5백 번 써 오너라. 만일 써오지 않으면 엄청난 벌을 받을 것이다.

학생은 집에 가서 아버지께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을 데리고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교장 선생님이 말합니다.

학생, 조금도 걱정하지 마. 너희 선생님은 간밤에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였단다. 의사가 너무 심하게 다쳐서 살 가망이 없다고 말하더구나. 성도를 핍박하면 그 보응을 받습니다. 산 소망을 품은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따른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방심하면 안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 거할 때 보호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물입니다. 반면 그 믿음을 관리하는 일은 나 자신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남이 내 믿음을 관리해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통하여 내 믿음이 흔들리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일에 넘어가면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무너지거나 잃는 것은 내 책임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현실을 안일하게 살아서 안 됩니다. 예배는 진지하게 드리고 기쁨과 감격이 있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따라 일해야 합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모세, 사십 년을 은둔자로 지내는 모세를 볼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실에 얽매여 무기력한 삶을 사십 년이나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호렙산 기슭에서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장면을 보겠습니다.

 

출 03:0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성도 여러분, 지난날의 상처, 얼룩진 흔적 때문에 혹 주저앉아 있습니까?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과거의 아픔과 또 현실의 안일함을 잘라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나의 경력이 아닙니다. 나의 능력도 아닙니다. 나의 과거도 아닙니다. 그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현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03:05). 과거의 실수와 지난날의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새롭게 하나님과 더불어 출발하라는 뜻입니다.

 

 

3. 산 소망을 품은 성도는 영광스러운 일로 기뻐합니다.

 

0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산 소망을 품은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도 영광을 얻습니다. 성도 여러분, 따라 합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도 영광을 얻는다. 08절에 앞서 먼저 06절을 이해해야 좋을 것 같습니다.

 

0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베드로는 갖가지 시험으로 인해 근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근심하는 기간, 고통이 가중되는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잠깐입니다. 06절 배경을 미리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때는 A.D. 64719일입니다로마 시내 중심가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로마의 14개 구() 중 서민이 사는 판자촌 중심의 10개 구가 완전히 불탔습니다.

이때 네로(37.12.15~68.6.9.) 황제는 80km나 떨어진 해안 도시 안티움(Antium)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네로가 화재 소식을 듣고 즉시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황제에 대한 정치 여론이 좋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내로는 이 위기 타개를 위하여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렸습니다. 예수쟁이가 불만을 품고 불을 질렀다.

이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재산을 약탈당하고 죽임당했습니다. 어떤 이는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 채 죽임당했고, 어떤 이는 십자가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하여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피하려고 로마를 떠났습니다. 지금의 튀르키예(Türkiye Cumhuriyeti) 카파도키아로 가서 바위에 굴을 파고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들에게는 세상의 소망은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습니다언제 그 굴에서 나가게 될 것인지 모르는 암담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세상 관점으로는 예수님 때문에 폭망입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성도들을 향해 베드로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습니다베드로전서입니다. 힘내라는 응원가입니다. 비록 고난과 시험을 당해도 그 기간은 잠깐입니다. 산 소망을 품으십시오. 영생의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즐거워하십시오. 라는 권면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도 믿음으로 앞날을 내다보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기쁨 중의 기쁨입니다.

이 구원의 즐거움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많은 실패를 하였습니다그런데도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인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할 기회, 회복할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실패하지 않은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음은 살맛 나는 인생을 만들 기회입니다. 소망이 있음은 새롭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교회도, 개인도, 우리 모두 내일에 대한 소망만 있다면 현실의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2022년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라마나욧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삼상 19:18~24)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중이 아닌 지금부터 산 소망을 회복합시다. 우리 교회가 라마나욧의 은혜를 회복합시다. 신령한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인도나 태국에서는 몸집이 아주 큰 코끼리를 야생에서 잡아 와 집에서 길을 들입니다. 그 과정을 보면 코끼리 발에 쇠사슬을 묶어 마당에 박아 놓은 말뚝에 걸어 놓습니다.

그러면 야성이 살아있는 코끼리가 뛰쳐나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피가 날 정도로 몸부림치고 울지만,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코끼리가 오랫동안 기를 쓰다가 더 이상 도망할 수 없음을 알고 그만 체념합니다. 그 때가 되면 마침내 쇠사슬을 풀어줍니다. 그런데도 코끼리는 묶여 있는 줄 알고 말뚝 주위만 빙빙 돕니다.

길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부터 코끼리는 온갖 놀이에 동원되는 노리갯감으로 전락하여 재주를 부립니다. 야성은 사라지고 하찮은 먹이를 조금 얻기 위해 재주부리는 불행한 삶을 삽니다.

 

우리 사람도 과거의 실패와 절망과 잘 안 풀리는 일들 때문에 현실의 아주 중요한 시기를 패배자의 모습으로 길들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대부분 사람은 그저 현실에 안주하면서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며 머물러 버리려는 마음이 더 앞섭니다. 현재 자기가 보는 세계가 전부입니다그러나 믿음의 꿈을 품고 모험하는 사람은 현실 너머 하나님의 놀라운 프로그램을 바라봅니다. 믿음의 열정을 품고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이제부터 이런 열정을 앞세워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오직 내일입니다. 영원한 생명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