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시다(히 10:19~2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8. 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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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세탁소 사과문. 아파트 근처의 한 세탁소에서 불이 나 세탁소 전부가 탔습니다. 이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아파트 벽보에 이런 사과문이 붙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불이 나서 옷이 모두 타 죄송합니다. 옷을 맡기신 분은 의류 수량을 신고해 주십시오.

이런 공고가 붙은 후 한 주민이 사과문 아래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사장님 저는 양복이 한 벌이지만 배상받지 않겠습니다. 그 많은 옷을 어떻게 배상하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십시오. 다시 일어나십시오.  그 주민의 글로 인해 여러 사람이 배상받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후 누군가가 위로의 금일봉을 전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계속 금일봉을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 아파트 벽보에 또 한 장의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월남전에서 벌어온 돈으로 어렵게 일궈 온 삶이었는데, 한순간에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주민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꼭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서 교제하는 중요한 목적은 서로 간 격려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격려는 죽을 사람을 살립니다. 좌절과 현장을 벗어나게 하는 동력입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새 힘입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모두가 힘들다고 합니다. 기진맥진해서 더는 살아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실패하여 넘어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 처한 자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줄 사람이 누굽니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 제목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시다.」로 정했습니다. 함께 힘을 내어 어려운 이웃을 세워 줄 작은 격려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 모두에게 격려가 필요합니다.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저자는 격려받는 일보다 격려하는 일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격려받으며 가 아니라 서로 격려하라고 권합니다. 무엇에 대한 격려입니까?

24절은 이에 대하여 두 가지 덕목인 사랑과 선행을 예로 제시합니다. 사랑과 선행은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믿음의 시련으로 인해 좌절하기 쉬운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어지는 32~35절 말씀을 보십시오. 당시 시련 속에서 힘들게 지내던 성도들이 격려로 인해 다시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난의 종류는 달라도 1세기 때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낙심할 만한 환경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외로움을 느끼는 분에게 격려해 줄 수 있습니까?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있었던 동계올림픽을 혹 기억하십니까? 그때 쇼트트랙 1,000m 종목에 일등으로 골인하고도 미국의 텃세로 인해 실격당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입니다. 차라리 실력이 모자라거나 반칙으로 실격했으면 괜찮겠는데 미국이 자국 상위 입상을 위하여 오노 선수를 무리하게 내세우고 강력한 우승 후보 김동성을 실격시켰습니다. 당시 빙상경기 연맹 회장 겸 2002 솔트레이크시티 한국 선수단 단장이 박성인 씨입니다. 

 

이 분이 그해 2월 25일 연맹 회장 자격으로 억울함을 당한 김동성 선수에게 금메달리스트와 같은 자격을 부여하고 1만 달러의 격려금을 지급했습니다. 또 연맹 차원의 포상금도 줄 것이라 밝히면서 이어 문광부에 올림픽 메달 수령자에 상응하는 연금지급 혜택도 건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인터넷에는 쇼트트랙 김동성을 위한 사이트가 많이 개설되었는데 그중 한 사이트에 실린 글과 그에 대한 답변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반칙으로 따낸 금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이 바로 영웅입니다. 당신에게 우리 민족의 마음이라는 메달을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승리자입니다.

김동성 선수는 한국 스포츠 사상 실격하고도 국민의 격려를 가장 크게 받았습니다. 그가 각 단체로부터 받은 격려금과 연금만도 1억 원을 넘어섰고 국내에서 만들어 전달받은 금메달도 8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격려를 받은 김동성 선수는 소감으로 저는 사실 행복한 8관왕이에요 하고 답을 했습니다. 격려의 막강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근심과 걱정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역경과 실패로 극심한 고통 사이에서 힘겹게 지냅니다. 예수님을 믿는 분 중에도 삶의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격려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혼자 살아가기는 힘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희망과 새 힘을 실어주는 사람, 흩어진 마음을 모아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사람, 의지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따뜻한 격려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격려는 우리의 몫이고 의무입니다. 김동성 선수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던 그런 격려의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몬 01:0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2. 신앙의 슬럼프에 있는 자를 격려하여야 합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ἐπισυναγωγή).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는 회당 예배 외에 또 다른 특별한 신앙의 모임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교의 관습처럼 회당 외의 모임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본서 저자는 이런 모임을 등한히 하는 자들에게 그 중요한 모임을 폐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아마 1세기 무렵 초대 교회는 날이 갈수록 그 뜨거운 열기와 날마다 모이던 그 열성이 점점 식어가는 위기를 맞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임 등한히 하다 보면 자칫 믿음의 길을 떠날는지 모릅니다.

어디 낙심하는 자가 목사님, 나 오늘부터 낙심하니 그리 아십시오. 하고 보고하며 낙심합니까? 저는 아직 그런 말 하는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세상 여러 일로 인해 등한히 하는 자, 별것 아닌 일에 목숨 거는 자, 낙심하는 자리에 들어가기 쉽습니다. 낙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래도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 찾아가면 온갖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 낙심의 책임을 대부분 교회와 목사에게로 돌립니다. 그럴 때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괴롭기도 하고 좀 고깝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참아야지요. 당연히 속에서 울화가 울컥 올라옵니다. 그저 못 들은 채 못 본 척을 해야 합니다. 혹 천하보다 귀한 그 영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속 좀 그만 썩이고 넓은 마음으로 사십시오. 세상 좁게 살지 마십시오.

 

살전 0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 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그러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모이는 일에 얼마나 힘과 정성을 기울입니까? 공동체에서 얼마나 합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초대 교회가 강력한 힘을 나타낼 수 있던 비결도 그들이 믿음으로 잘 모이는 데 있었습니다.

언제 잘 모였느냐고요? 안식 후 첫날만 모인 것이 아닙니다. 또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 시도 때도 없이 모였습니다. 행 02장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자주 모였는지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행 0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고, 그리고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전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바쁜 세상에 날마다 모이는 것이 번거롭고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이는 일에서부터 문제가 풀리며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한 번만 모이는 것은 주님 안에서 서로 격려하기에는 매우 부족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하루, 세 번 정도는 식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쁘다고, 귀찮다고 중간에 한 끼씩 건너면 어떠할 것 같습니까? 난리 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어떻습니까?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더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까? 주일 오전 예배에만 달랑 나오는 분은 무늬 성도로 전락하기 알맞습니다. 모이지 않고는 믿음 성장 못합니다. 모임을 통해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고, 모임을 통해 진정한 교제를 이룹니다.

 

 

3. 우리에겐 격려할 수 있는 시간이 대단히 짧습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날이. ①본서의 기록 연대와 연관되어 예루살렘 멸망의 때를 가리키는 설과 ②그리스도의 재림 때를 가리키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두 가지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두 날을 그다지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 당대에 주님께서 오신다고 믿은 흔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본서의 저자는 그 심판의 날이 다가올수록 다가오는 고난과 박해를 격려로 이겨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피차에 사랑하는 일을 훈련하고 격려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그 격려는 모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하려면 우선 같이 있어야 합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 억울함을 당한 사람, 마음에 고통을 당한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격려의 시작입니다.

 

거창한 말을 꼭 해야만 격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넉넉하게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고난받는 사람에게 그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욥의 친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더 상처를 주고 오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일 때마다 어떤 격려를 주고받아야 합니까? 세상의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십시오. 말씀은 영혼을 살리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본문 22~24절 말씀을 보면 세 가지 중요한 격려의 내용이 나옵니다.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①믿음(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도록 믿음을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에서 탈출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②소망(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수많은 언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려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그 소망이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흔들리지 않고 소망을 든든히 붙잡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③사랑(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왜 사랑과 선행을 병행해야 합니까? 선행은 사랑을 구체화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행은 사랑 안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히브리서 10장에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보배로운 덕이 믿음 소망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세 가지 덕목은 우리가 만날 때마다 격려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웃을 돌아보고 격려할 수 있는 시간이 무제한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학자요, 정치가요, 목사요, 16대 주한 미국대사(1993년 10월~1997년 2월)를 지낸 제임스 레이니( James T. Laney 1927~) 에 대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의 에모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의 일입니다. 에모리 대학교로 가는 길에 터는 넓은 데 작은 집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레이니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매우 마음이 아프고 가엽게 보여 학교에 가고 오는 길에 늘 그 집에 들러 Good Mornning, Good Evening 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노인을 찾아가서 대화 상대가 되어 주거나 정원의 잔디를 깎아주며 2년 가까이 사랑과 격려의 교분을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얼굴이 안 보이면 집에 들어가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음식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노인이 보이지 않아서 집을 방문해 보니 전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조의를 표하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갔더니 그 노인이 다국적 기업 코카콜라의 실질 창업자인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inship Woodruff. 1889.12.6.~1985.3.7)이었습니다.

 

그때 비서 중 한 사람이 레이니에게 노인의 유서를 전합니다. 당신은 2년이 넘도록 내 집 앞을 지나다니며 나의 말벗이 되어 준 친구였소. 우리 집 뜰의 잔디도 깎아주고 커피도 나누어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에게 코카콜라 주식 4%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그 주식을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25억 달러나 되는 거금입니다.

레이니는 이 거액을 전액 미국 남부에 있는 에모리 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하였습니다. 레이니는 후에 에모리 대학교의 총장이 되었고 그 학교는 거대한 명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또 이웃에게 사랑과 위로와 격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우리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쩌면 예수님이 보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不知) 중에 식물을 대접한 자가 천사이었듯이(히 13:02, 창 18:01~19) 우리가 만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나를 통해서 위로받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과 친절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03:0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0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