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당신은 매우 행복합니다 2. [작은아들 눅 15:20~2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6. 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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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이어 말씀을 올립니다 

 

 

 4. 아버지는 울며 돌아오는 탕자를 맞아주십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작은아들은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18). 나를 대신해서 돌아가는 일을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새로운 생활을 열지 못합니다.

일어나야겠다는 상상과 소원이 그 사람의 길을 열지 못합니다. 그러면 탕자의 열어가는 새 삶이 무엇입니까?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에 있습니다. 결단을 아버지의 집으로 옮기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이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망설이는 고민을 많이 하였겠습니까?

내가 돌아가면 과연 아버지께서 받아 주실까? 혹시 문을 쾅 닫으시며 이 못된 자식아, 그만 돌아가, 라고 하지 않을까? 기진맥진한 몸으로 집에까지 갈 수는 있을까 하는 망설임으로 많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믿음의 결단은 외롭지만 홀로 해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 또 어느 친구에게도 의논하지 마십시오. 또 아내의 일이나 남편의 일, 자식의 일을 놓고 좀 편하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상담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조언하거나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만이 내려야 할 결단입니다. 결단이 서면 내 모습 이대로 돌아가면 됩니다. 나는 지은 죄가 너무 커. 이대로는 도무지 돌아갈 수 없다.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누더기를 입은 만신창이 모습이라도 좋습니다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대로 맞아주십니다. 속히 돌아오면 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럴 때 어떤 찬송을 부르면 좋을 것 같습니까? 525장입니다.

 

1.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 와 돌아오라.

2. 돌아와 돌아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우리 아버지께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 와 돌아오라.

3. 돌아와 돌아와 환난 있는 곳과 죄가 있는 곳과 미혹 받는 데서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 와 돌아오라.

4. 돌아와 돌아와 집에 돌아오라 모든 것 풍성한 아버지 집으로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 와 돌아오라.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직도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기진맥진하여 돌아오는 작은아들을 보고 달려옵니다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보기 전에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측은하게 여긴 것은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표시입니다. 아버지가 막연하게 감정으로만 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과 같은 마음으로 고통을 나눕니다.

 

아들이 외로울 때 아버지도 외로웠으며, 아들의 가슴이 찢어질 때 아버지의 가슴도 찢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창기와 함께 보낸 수많은 밤을 알고 있습니다.

술에 만취하여 비틀거리며 방황하던 탕자를 아버지의 눈은 뒤쫓고 있었습니다아버지는 돼지우리에서 절망 속에 빠져 신세타령하는 모습도 알고 있습니다. 손에 묻은 때와 창백한 얼굴 충혈된 눈, 굶주린 창자까지 보았습니다탕자로 추락한 작은아들 거지로 신세로 추락한 아들의 그 삶을 능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측은히(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플랑크니조마이) 여겼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5.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회개입니다.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탕자의 자리로 추락한 작은아들은 자기를 돌아봅니다.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을 생각합니다. 하늘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그런데 21절을 잘 보시면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늘이란 유대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조심하느라고 대신 쓰는 말입니다. 하늘이란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하늘에 죄를 지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여러 고대 사본(古本)에는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19). 라는 말이 21절에도 첨가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각오한 회개와 겸손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진정으로 고백합니다작은아들은 아버지를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면목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린 죄, 지나간 시간의 잘못을 철저히 고합니다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방랑객과 나그네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방랑객은 세상을 떠돌면서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이고 나그네는 곳곳을 떠돌다가도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면 그것은 재기할 희망이 있는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3가지의 집을 안내합니다. 첫째는 가족이 있는 가정(03:20)이고, 둘째는 교회, 혹은 성전(딤후 02:20)이고, 셋째는 주님께서 계시는 천국(14:02)입니다신앙인은 이 집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성도의 위기가 무엇입니까? 집에 대한 그리움의 실종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신앙인이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그리움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여기 작은아들을 보십시오. 한때는 아버지보다 아버지의 재산에 더 관심이 컸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빨리 물려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그러다 상속받은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나니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잘못했음을 알았습니다. 돈 많은 사장 자리에서 탕자의 자리로 추락한 후 염치 불고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6. 아버지의 집에 돌아오면 아들의 위치가 회복됩니다.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작은아들은 고민과 번민 속에서 몸부림치다 마침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처신하려 합니다. 아들의 특권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죄인의 자리에 서 있는 모습, 하나님께 죄를 고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의 위치로 회복시킵니다. 탕자로 추락한 작은아들 의지와 상관없이 회복시킵니다. 아버지 사랑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재산을 정리하여 떠난 날부터 탕자가 되어 돌아온 날까지 잊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자마자 이내 고민하고 외로워하는 아들의 고통을 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하루빨리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가 먼데도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 나왔습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한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맞추었습니다. 상처 나고 더럽고 몰골이 흉한 아들 그대로를 품은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 때문입니다. 크게 잘못하여 집을 떠나갔음에도 용서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아들의 자리로 회복시켜주시겠다는 아버지 사랑입니다.

 

시 145:0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힌 것은 마음을 열어 크게 환영하는 증거입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는 것은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는 모습입니다. 신을 신겼다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품꾼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을 회복해 주시는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작은아들을 보십시오. 매우 염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니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잔칫상에 앉아 있습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 염치가 없습니다.

우리의 행한 여러 형태의 일을 돌아보십시오. 도무지 죽어도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은혜로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나아가 기독교의 구원은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 진리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았습니다.

 

엡 02:0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 때문에,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것 때문에 아버지의 품을 떠났으나 막상 그 길은 고통과 절망의 길이었습니다. 눈물과 한숨의 늪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눈물의 현장, 돼지 치는 우리에서 탕자는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잘 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알았습니다인생은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떠나 모든 재물을 잃고 사업이 파산하기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탕자들이 있습니다오늘의 탕자는 그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다 소멸하기까지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건강과 젊음을 자랑하지만, 그 건강은 순간에 떠나갈 수 있습니다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궁핍한 환경으로 몰아넣는 일입니다궁핍이 없다면 이 탕자가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모든 것이 날아간 후 쉴만한 곳도 제대로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까? 절망 같은 한숨의 자리에 봉착했습니까? 그때는 돌아가야 하는 때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궁핍이란 하나님 앞에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버지의 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요람임을 깨닫게 하는 기회입니다아버지의 집을 향해 가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마귀는 다정스럽게 속삭입니다지금 돌아가면 네 앞길은 끝장이야, 너무 서두르지 마, 잘 해결될 터이니 그때 봐서 좋은 기회 오면 돌아가라고. 이제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면 되는 거야. 마음이 약해지고 미루면 안 됩니다.

 

욜 0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