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2년 말씀

여러분은 무엇을 필요로 합니까? (요 06:30~4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6. 4.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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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에 사는 동안 나름의 행복을 기대하고 가꿉니다. 가끔은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고 물어오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면 직분자로서 자존심 상할 것 같아 행복합니다. 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혹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고 정리하셨습니까가끔 행복 지수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내가 갈망하는 욕구와 그 욕구의 성취 관계에서 결정되는 정서 만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내가 원하는 행복을 100이라 할 때 성취한 행복이 70이면 그 행복 지수는 70이 됩니다.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대부분 경제력이 높은 서구의 복지 국가들입니다. 반면 가난하면서도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도 더러 있습니다. 부탄, 네팔, 방글라데시 등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면서도 행복 지수는 낮은 편에 속합니다. 왜 그런 것 같습니까? 짧은 시간에 욕구를 많이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행복 지수가 높아지기를 원합니까? 성취도가 높거나 혹은 많은 것을 갖추고 있으면 됩니다. 많은 것을 갖추지 않을지라도 욕구가 적으면 됩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불평을 줄이면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인해 행복 지수가 상승할 것입니다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행복 지수를 주로 외부의 환경에 두는 사람은 좀처럼 행복할 수 없습니다.

생존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은 탈진하기 때문입니다기독교인은 은혜를 받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 욕구가 좀 높습니까? 성취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감사하는 생활로 자기를 단장하십시오. 감사야말로 행복 지수를 높이는 비결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복을받는교회 가족의 근본 필요가 무엇이며 그 필요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전하려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여러분은 무엇을 필요로 합니까?로 정했습니다.

 

 

 1. 사람의 근본 필요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일입니다.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사람의 육신을 위한 직접 필요는 떡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육체를 위한 물질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예로 요한복음 앞부분 06:05~13을 보면 예수님께서 벳새다의 들판에 모인 배고픈 군중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그 기적 자체가 사람의 배고픈 일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도 이웃의 빈곤을 본다면 무관심하게 여기지 말고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동시에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리는 분이 있습니까? 근본 필요가 무엇인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대다수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그런데도 행복 지수 최고입니다

이제 먹고사는 문제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 세대에게는 절대 빈곤이라는 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합니다. 세계로 눈을 돌려 봅시다코로나19가 불러온 지구촌 변화는 18억 명 이상의 절대 빈곤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전쟁과 질병으로 방글라데시 사람들처럼 고민하는 처지입니다.

기독교인은 이웃의 빈곤 문제를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떡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근본 해결책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벳새다 들판에서 오병이어 기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배고픔을 면한 군중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달라진 것이 안 보입니다. 오병이어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며 방황하며 슬퍼하며 배고파합니다. 인간의 근본 필요는 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오병이어 기적을 통한 핵심 교훈은 신령한 것에 관한 일입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영접하는 일입니다오병이어의 현장을 체험한 후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 기적 때문에 감격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미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도 더 큰 표적을 또 보여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1절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세는 광야에서 사십 년이나 만나를 내리게 하여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었습니다. 선생님, 이 한 끼 정도 가지고는 턱도 없습니다.

모세만큼 기대는 안 해도 어느 정도 민생고를 책임져 주십시오. 라며 강짜를 부립니다. 그러면 믿겠다는 흥정인데 광야 시절 백성의 심성을 보십시오하늘에서 날마다 값없이 내린 만나로 만족하였습니까? 만족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왜 항상 만나만 주십니까? 고기도 주셔야지요. 하며 불평했습니다.

이들이 꼭 구해야 하는 필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지 못합니다. 신령한 눈이 열리지 않으니 이렇게 말합니다.

 

민 11:0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2. 사람의 근본 필요는 영생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의미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론만 알고 내게 영생 관계로 연결하지 않으면 그것은 곡창(穀倉) 문 앞에서 굶어 죽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이어야 합니다.

먹음으로 우리의 주린 것을 멈추는 것처럼, 믿음으로 우리의 신령한 기갈을 멈추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 하심은 예수님은 생명이신 동시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비유한 일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한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사 55:0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우리는 직장에서 승진, 더 큰 사업, 더 많은 물질 명예 등을 구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근본 필요는 아닙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금을 가게 하는 요소는 아무리 많이 가졌을지라도 안식과 평안함을 주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눅 12:18…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지금 하나님과 신령한 사귐의 관계를 통해서 여러분의 근본 필요가 채워졌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아니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하나님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아직도 굶주린 사람입니다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혼란한 문제에 부딪힙니다. 내가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해도 그 기쁨은 순간뿐입니다.

이내 우리는 삶의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 앞에 서서 떨어야 합니다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입니까? 그다음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여러분의 그다음 마지막에 직면해야 할 일은 무덤입니다.

 

우리가 세상 삶을 마치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실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이 사실 앞에서 여러분의 성공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나의 성공을 위해 상대방과 비교에서 오는 빈곤감을 확 줄입시다. 믿음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욕구 불만 오늘 확 날려 버립시다.

자기 욕구를 줄이는 일은 영생을 얻은 자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세상 삶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입니까? 행복으로 봅니까? 고통으로 봅니까? 행복으로 보면 신령한 길이 열릴 것이고 고통으로 보면 계속 욕구 불만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3. 사람의 근본 필요는 예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나는(ἐγω) 생명의 떡이다.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흔히 우리가 친구와 대화할 때 내가 말이야, 내가 있잖아 하는 식의 일인칭과 다릅니다. 나는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물음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하신 것처럼 말입니다(03:14).

예수님은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만이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누가 이런 엄청난 약속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와서 믿기만 하면 그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아직도 내 속에 내 삶에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래도 다 해결된다는 말입니까? 예 됩니다. 주님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예수님을 신뢰하고 나의 삶을 온전히 맡기면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는 능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 사업, 결혼, 재물, 성공, 성취 등 많은 문제와 싸웁니다. 그리고 고민도 많이 합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믿고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 문제에 대한 근본 답입니까?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나를 지으신 분이시며 나의 섭리자, 나의 구속자, 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의 문제의 답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혹 영접했다고 할 때 그 말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면 무슨 부족함이 있습니까?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서 자신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놀라운 일이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그분을 나의 아버지로 믿습니까그러면 이제 두려워하지 맙시다. 불안에 싸일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담대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당당히 행복한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지금부터 주님을 바라보며 찬송하십시오그러면 우리 생애의 모든 갈등과 고통을 넘어서서 참된 기쁨과 만족을 되찾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원한 만족은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개개인의 행복 지수는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 믿음의 행복 지수가 더욱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무엇보다 세상에 속한 일로 행복 지수 밑바닥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합시다. 믿음의 행복 지수 잘 관리합시다우리나라 분명히 잘 사는 나라입니다.

경제면에서 이만하면 선진국 수준 아닙니까? 경제 대국 군사 대국 소리도 듣습니다. 복지 혜택은 웬만한 나라보다 우위를 점합니다. 저도 선교의 일로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처럼 상대성 빈곤을 느끼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절대 빈곤은 분명히 슬픈 일입니다. 사회 복지가 충분히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상대방과 비교하여 빈곤감을 느끼는 일은 오늘 바로 고쳐야 합니다. 우리나라 행복 지수를 올리는 일에 나도 동참하여야 합니다. 이 일이 행복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과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자들 대화를 오늘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와 트집을 잡고 시험하는 그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육체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느꼈지만,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느끼지 못한 일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에는 집착했지만 영원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이 마른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신령한 말씀을 듣고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낮에 물을 길으러 가지고 온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마을 전체를 예수 바람이 불게 하였습니다(04:29). 이 일이 오늘 우리가 근본으로 필요로 하는 가치관 되기를 축원합니다.